현장에서

[현장에서] 어린이날의 단상 / 조대형 기자

조대형 기자
입력일 2013-05-02 10:50:00 수정일 2013-05-02 10:50:00 발행일 2013-05-05 제 284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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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물론 기자에게도 ‘어린이’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날은 생일, 크리스마스와 함께 부모님께 선물을 기대할 수 있는 3대 대목 중 하나였다. 당시 남자 어린이들이 원하는 선물은 대부분 비슷했다. 특히 장난감 로봇, 게임기, 블록, 야구 글러브 등은 최고 인기 선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쉽게도 위에 열거한 선물을 한 번도 받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대신 나를 동네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데려가셨다. 입이 비쭉 나와 있는 내게, 아버지는 읽고 싶은 책을 원하는 만큼 골라오라고 했다. 선물을 받지 못했다는 치기에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골라왔다. 그렇게 골라 온 책이 두 개의 쇼핑백에 가득 담기고 나서야 난 서점을 나왔다. 이러한 아버지의 유별난 책 선물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도 이어졌다. 평소 검소하신 아버지의 성향으로 볼 때, 서점에서의 통 큰 선물은 어린 내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어린이날 받은 장난감 로봇과 게임기를 자랑하는 친구들 틈에서 나는 별로 할 얘기가 없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책을 선물로 준 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아버지의 책 선물이 장난감 로봇이나 게임기와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큰 선물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책값에 돈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 덕분에 책 읽는 즐거움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었고, 그 책들은 살아가는 데 훌륭한 밑천이 됐다.

요즘 어린이들의 위시리스트는 무엇일까. 각종 스마트 기기가 장난감을 미뤄내고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내 아버지의 방법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왕이면 어린이들을 위한 신심 서적이면 더욱 좋겠다. 게다가 최근 교계 출판사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서적을 내놓고 있으니 금상첨화다. 이번 주일에는 미사 참례 후에 아이들과 함께 본당 성물방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골라보라고 해보자. 물론 입이 비쭉 나온 채로 수년이 흘러서야 그 선물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할 테지만 말이다.

조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