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탄생 2천년을 앞두고 지나온 세기를 반성하는 한편, 새로운 천년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겨레만은 아직도 냉전시대의 유물을 그대로 간직한 채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국제화 세계화를 내세우면서도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헐뜯고 미워하는 이러한 현상은 세계사의 흐름과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신앙인들이 살아야 할 사랑과 평화의 복음적인 삶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화해와 일치의 성사인 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투신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서울대교구에서는 평화와 화해의 일치를 이루지 못한 우리의 삶을 참회하면서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민족의 연대를 다지고자 광복 50주년을 맞아 민족화해위원회를 발족하였습니다.
남쪽은 비만 걱정
우리는 최근 매스컴과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북녘 동포들이 겪고 있는 식량난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면서도 남쪽의 우리들은 영양과다와 비만을 걱정하고 있는데 북녘의 형제자매들은 굶주림이 지나쳐 굶어죽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미국이나 일본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이 북녘 동포들에게 식량을 보내야 한다며 서두르고 있겠습니까? 교황성하께서도 북녘의 식량난 해결에 도움을 주시고자 이미 성금을 보내셨으며 그들에 대한 한국교회의 보다 큰 관심과 애정을 촉구하신바 있습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북녘 땅에서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은 그동안 서로 대립하고 미워해온 우리들에게 참회하라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또한 그것은 형제간의 사랑을 실천하라고 부르시는 음성이기도 합니다.
인종과 민족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도 북녘 동포들에게 형제적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데, 한 핏줄 한 형제인 우리가 그들의 굶주림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동포를 억울하게 하는 행위이고 그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느님 두려운 줄을 모르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데, 어찌 그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북한정권이 무너질 좋은 기회인데 왜 그들을 도와 통일을 늦추도록 만드느냐고 북녘 동포들과의 나눔에 반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앞서는 것은 인간생명입니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또한 그 어떤 체제도 인간생명보다 귀중하지는 못합니다. 북녘 땅의 같은 핏줄들이 굶고 있는데, 여러 명분이나 이유를 들어 그들의 굶주림과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복음적인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인간생명이 최우선
우리는 굶주려 아사지경에 이른 북녘 동포들의 절박한 사정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들과 나누어야 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눔이란 결코 내게 여유가 있는 것을 남에게 주는 적선행위가 아닙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반포한 평신도 교령에서는 「사랑의 실천은 아무런 의혹도 자아내지 않는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자유와 품위를, 마음을 다하여 존경해 주어야 한다」「정의의 입장에서 이미 주어야 할 것을 사랑의 선물처럼 주어서는 안 된다」(8항)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동포신자들은 이미 북녘 땅에 국수공장을 세워 북쪽 주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였으며 뉴아크 교구에서 사목하시는 박창득 신부님께서는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지난달 평양에 다녀오셨습니다. 북녘 땅에 세워질 국수공장에는 한대당 하루에 1백50g짜리 국수 6천 그릇을 생산할 수 있는 국수기계 3대가 우선 설치될 것이고 그에 필요한 밀가루는 중국에서 구입되어 북녘 땅으로 수송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세끼씩 한 달 치 먹을 국수의 생산비용, 다시 말씀드려 국수 90그릇의 생산에 드는 비용은 우리 돈으로 4천 원 정도 입니다. 이정도면 북녘동포 한 형제의 한 달 식량이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눔은 교회의 의무
초대 교회로부터 이어온 나눔의 전통은 교회의 의무이며 양보할 수 없는 권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극심한 박해상황에서도 이 전통을 지켜 왔습니다. 이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서는 이 전통을 이어 미국에 거주하는 동포들과 함께 북녘 동포들과 나눔의 식탁을 마련하며 이에 대한 형제자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이 운동은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는 참회의 정신과 함께, 사랑을 실천하라고 명하신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려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참회와 참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각자는 앞으로 2년 동안 자신의 월수입 중 0.2%를 북녘 동포들과 나눌 수 있는 국수비용으로 떼어 낼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50만원 소득자는 1천 원씩을, 1백만 원 소득자는 2천 원씩을 매월 떼어 북녘 동포들과 나눈다면 그들에게는 생명의 음식이 되고 우리에게는 하늘의 보화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