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에서 7월 6일까지 약 1주일에 걸쳐 발트 3국 곧 리투아니아 (Lithuania), 라트비아(Latvia), 에스토니아(Estonia)와 핀란드(Finland)를 관광여행하고 돌아왔다.
처음 이번 여행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백야(白夜)’라는 말의 마술에 홀린 까닭이었다. ‘백야’ 무슨 뜻일까? 실제로 가서 보니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나라 여름의 현상을 좀 더 밀고 가면 ‘백야’의 모습을 닮게 될 것이다. 낮이 길고 길어 밤 열한시경까지 훤하다. 잠간 어두워지는 듯 싶다가 다시 날이 밝는다. 이런 정도의 현상을 두고 신기하다고까지 말할 것은 없다. 북극점(北極點)에 가면 해가 낮게 솟아 6개월 동안 하늘에 머물러 있다니, 그 쯤 되면 모를까….
‘백야’는 그런 정도였지만, 언어와 문화와 역사가 서로 다른 발트 3국이 오순도순 손을 잡고 평화스럽게 살아나가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평화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3국에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구 ‘소련’의 억압으로 고생하다가 1990년대 초에 간신히 독립을 했다는 점이다. 3국 모두 긴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어, 도시들이 중세풍의 아담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리고 비슷한 자연 경관도 공통점이랄 수 있겠다.
그러나 이번에 본 이런 저런 것들 중에서 단연 이색적이었던 것이 ‘십자가의 언덕’이다. ‘십자가의 언덕’은 리투아니아의 북쪽 국경 근처에 있다.
설명을 듣고도 잘 납득이 안 되는 채로 가보니 과연 이관(異觀)이었다. 가서 보고도, 저게 뭔가? 하는 의문이 오히려 더 솟는다. 웬만한 크기의 언덕이 크고 작은 십자가, 그것도 고상이 달린 가톨릭 십자가와 성모님 그리고 묵주로 완전히 뒤덮여 있다. 이곳은 로만 가톨릭이 80퍼센트나 된다더니 문자 그대로 성모님과 묵주와 십자가가 솟아 있는 숲이다. 십자가는 사람의 키의 곱은 될 정도로 큰 것도 있고 손바닥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작은 것도 있다. 묵주도 각양 각색, 그 숫자는 요새도 계속 불어나고 있어 아무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5만 정도로 추측한다 한다.
첫 째로 연상되는 것이 묘지다. 그러나 묘지는 아니다. 사람의 유해가 묻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묘지의 성격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난 해와 죽은 해의 숫자를 새겨놓은 십자가가 얼마든지 있어, 영원한 이별을 기념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묘지 다음으로 연상되는 것이 미술 전시장이다. 십자가의 재료도 여러 가지이다. 나무, 각종 쇠붙이, 돌. 조형적인 솜씨도 천차만별이다. 미술가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솜씨와는 인연이 없는 단순 소박한 것도 있다. 글귀가 씌여 있거나 새겨져 있는데, 하나도 같은 것은 없다. 모두가 가신 이의 영혼을 위로 하거나 영원한 명복을 비는 글귀들이다.
결국 사랑의 뜨거운 염원을 불태우는 곳, 자유를 갈구하여 절규하는 곳이 이 곳이다. 이곳은 이제 발트 3국 사람들의 ‘성지(聖地)’라 한다. 1993년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방문한 후 더욱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십자가의 언덕’이 품고 있는 강렬한 염원 중 제일 뚜렷한 것은 역시 정치적인 염원이라 할 것이다. 자유와 독립의 갈구, 이것이다.
‘십자가의 언덕’의 유래는 멀리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이대로 이곳은 위정자에게는 껄끄러운 곳이고, 민중들에게는 저항의 거점이 됐다. ‘구소련’이 점령하고 있을 때, 낮에는 소련군이 탱크로 밀어 없애면 밤에는 또 다시 많은 십자가가 슬그머니 생겨났다고 한다. 결국 소련은 두 손들고 물러난 꼴이 됐다. 무저항주의의 무서운 힘이다.
이제 ‘십자가의 언덕’은 자유를 갈망하는 약소민족의 뜨거운 염원과 기도의 상징이 됐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