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대구ㆍ부산ㆍ마산 학술원 발표회 지상중계-천주교가 한국예술에 미친영향] 상

김길수 교수ㆍ선목신대
입력일 2011-05-27 14:59:54 수정일 2011-05-27 14:59:54 발행일 1983-08-14 제 136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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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자료忘失…발굴ㆍ개발에 힘써야
미술분야 숭전大 박물관 소장의 마리아상과 十字架양식이 가장 오래돼
壬亂때부터 전래…1910年 이후 장발氏때 외국수입위주서 탈피
다음은 대구ㆍ부산ㆍ마산교구 가톨릭학술원이 7월 30일ㆍ31일 경주 유스 호스텔에서「천주교 전래가 한국문화에 미친 영향 」을 대주제로 개최한 합동 학술발표회에서 김길수 교수(선목신대)가 발표한「예술에 미친 영향」전문(全文)이다. 김 교수는 이 발표에 앞서『가톨릭예술에 관한 연구는 아직, 출발점에 서있고 더구나 가톨릭 예술과 한국예술의 상호 관계적 측면에서의 접근을 고려하는 연구영역은 더욱 원시적 상태였다』고 지적하면서『이러한 현실에서 더구나 한 문외한이 이 부분에 관한 관심을 표시해보고자 함은 다만 2백주년을 맞이하는 기쁨의 한 표현이요 장차 관계전문가들의 업적을 기대하고 있다는 지극히 소박하고도 서투른 눈매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천주교 전래과정과 문화 예술적 접촉

1784년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종교적 집회를 갖고 신앙실천운동을 전개하면서 한국천주교회가 자치적으로 설립이 되기 이전에 상당기간 소위 서학(천주학)이란 이름으로 천주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기간이 있었다. 이는 천주교 전래 이전의 전사로써 학문적 및 문화 예술적 접촉이 비록 부분적이지만 먼저 이루어졌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정리해본다면

①지금까지 가톨릭미술에 대한 가장 오래된 사료는 현재 승전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마리아상과 십자문(十子紋)양식이다.

②1593년 임진왜란 당시에는 고니시유 기나가(小西行長) 진중의 군종신부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가 경남 웅천에 약 1년간 머문 기록이 있다.

이를 전후한 일본의 예수회 신부들의 전교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간접적 영향과 접촉이 있었을 것으로 유추할 수는 있겠다.

③부경사행(혹은 연경사행)을 통해 한역서학서가 들어오면서 주로 서학파(남인 소장학자 중심)에 의해 천주교가 학문적으로 연구되고 입연도 십구경(入燕道 十九景)에 북경의 성당들이 들어있어 당시 중국에 있던 선교사(신부)들과 접촉하면서 성화ㆍ묵주ㆍ고상ㆍ상본 등이 지입되었다.

④1631년 정두원(鄭斗源)은 부경사행에서 천리경ㆍ서포자명종ㆍ만국지도 천문서ㆍ서양풍속기ㆍ천주교 서적 등을 갖고 왔으며

⑤1645년 소현세자는 인질로 북경에 머무는 동안 아담샬 신부와 친교를 맺고 귀국길에 천문ㆍ산학ㆍ지구의ㆍ천주상ㆍ성물 등을 갖고 왔다.

⑥1784년 이승훈은 이벽의 권유로 북경에 가 그라몽(de Grammont) 신부에게 성세를 받고 귀국하면서 천주교 서적과 묵주ㆍ성물ㆍ상본 등을 갖고 왔다.

⑦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허균이 천주교를 믿었다고 한다. 안정복과 박지원도 허균의 신교사실을 인정하는바 허균은「홍길동전」의 저자로 홍길동전의 작품구성에서 천주교의 평등사상과 사회개혁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

⑧성호 이익(1750년대의 서양과학 연구학자)의 천주실의 발문ㆍ칠극논평과 안정복의 교리연구 등 당시 유학자들의 천주교에 대한 관심은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 등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고 볼 수 있고 이때 교리전파에 있어 언어의 불통을 보완할 예술적 전수가 있었을 것으로 유추할 수가 있다.

⑨1785년부터 천주교는 박해시대로 들어가 4대 박해와 10여차의 지방박해로 1만 명 이상의 순교자가 나게 되고 한불조약이 맺어지던 1866년까지 약 1백여 년간 지하교회가 된다.

이 기간 중, 즉 개화기 이전의 가톨릭 전래시기에 예술분야의 자료는 대부분 망실되고 당시의 것을 물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지금 절두산에 있는 순교자기념관과 숭전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이며, 지금 2백주년을 계기로 한 각종 사료발굴 개발사업추진에 기대해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미술 분야

가, 서양미술의 도입

①유추근거=임진ㆍ정유왜란, 유럽지도ㆍ천주실의 등 서양문물속에 미술기법과 사상, 종교화ㆍ전례에 따른 성상ㆍ성화 전래, 르네상스풍의 미술 영향, 현존십자가, 묵주ㆍ메달(성패)

②한국 근대미술사의 기점=고지도(古地圖-坤興全國ㆍ大東興地圖) 이 시기의 미술, 투시도법의 도입

㉮재래적 계열=서는, 안진향제 황산곡체의 되풀이

화는 남화분위기 묘사. 특이점은 한국화의 태동

※진경산수를 그린 심사정, 풍속화에서 김홍도ㆍ신윤복ㆍ전기ㆍ장승업 등 한국미술을 민족적으로 다룸. 그러나 이는 일제탄압으로 전승되지 못함.

㉯재래적인 것에 서양화의 기법을 도입=김수철ㆍ이인문ㆍ채용신ㆍ홍세습ㆍ이건필 등

㉰순수서양화=국립중앙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맹견도의 작가와 이희영(李喜英-신자로 순교자임)

③1882년 이후 빠리 외방전교회 중심에서 1909년 베네딕또회(독일), 1927년 미국 메리놀회, 1933년 아일랜드 꼴룸바노회 등이 진출, 미술상의 특색을 발휘하게 됨.

나, 회화-예수상 성모상 등 전교용 상본 등 일방적 전입

이희영(루까)-성상을 잘 그림, 포교에 노력.

1801년 3월 29일 참수 순교했음. 숭전대학교 박물관 소장견도(犬圖ㆍ1795년 작품)

다, 조각-독립된 한국 가톨릭 조각으로써 형성은 아직 되지못함.

명동성당 약현성당 대구 계산동성당의 건립과 성당내부의 예수상 마리아상 성인성녀와 천신상들의 조각.

라, 1910년 이후의 가톨릭 미술 - 장발(張勃) 교수

○12종도=1925년 명동성당 제단 벽화를 그림. 사실적 수법과 보일럼적 장식성이 뛰어난 신앙고백적 화풍. 한국가톨릭 회화의 대표작이다.

○군종작품=1930년대 수심에 찬 예수중심으로 우(복녀) 좌(복자상) 인물의 지위, 사성을 고려 고증하여 각기 다른 표정을 표현했다. 가톨릭회화의 걸작이다.

복자 김대건 신부ㆍ복녀 김골룸바와 아녜스 형제 등 기타 상본화.

서울대 미대학장시의 뛰어난 업적(참고-이경성 교수의 논문)

마, 조각=죽림동ㆍ전주 전동ㆍ명동성당의 성모상, 성베네딕또상, 인천 답동의 성바오로상, 尹承旭의 그리스도의 입상, 복자 김 신부의 대리석상, 약현성당의 성모자상, 성요셉상, 14처 이상 미술 분야에서 한국가톨릭미술에서 특기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발 씨가 서울대 미대학장으로 재직하면서 가톨릭 미술의 본거지가 되고 비로소 외국수입 위주의 성 미술에서 성당장식에 참여의 길을 열었다.

둘째, 1954년 10월 5일부터 12일까지 미도파 백화점에서 열렸던 성 미술전은 종합적 가톨릭미술의 결성을 보였다.

이후 현금의 가톨릭 미술가협회 활동에 이르렀다.

김길수 교수ㆍ선목신대

김길수 교수ㆍ선목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