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징기스칸의 영웅담을 읽었을 때 우리와는 거리가 먼 세계, 그리고 아주 오래된 이야기로 여겨져 그렇게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몽골의 광활한 초원과 발걸음을 떼어놓으면서부터 말과 친해져야 하는 몽골인의 현실을 만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영웅의 이야기는 스펙터클 대서사로 구성되어 있고 볼거리가 많은 대신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 초점을 맞춰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가 흔하다.
「징기스칸」. 이 영화는 활극적인 요소를 적절히 배합시키면서 유년시절과 청년기, 몽골을 통일하기 위해 그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굴곡과 갈등, 배신과 신뢰, 전쟁과 평화 등 굵직한 남성적인 선에서부터 그의 인간적인 면과 위대한 영웅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 주제를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가 작은 부족의 칸의 아들에서 몽골을 통일하고 그 광대한 영토가 유럽까지 가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지도력 덕분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지도력은 어머니의 영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여자들, 특히 이름난 부족의 여자들은 납치의 대상이었다. 자신을 납치한 부족의 칸을 위해 아들을 낳아주시고 그 부족의 지어미로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딛고 관용과 사랑으로 원수의 종족과 세상을 대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징기스칸의 어머니 헐룬은 부족의 배신으로 남편을 잃고 대평원에 어린 자식과 버려지는 운명 속에서 자식을 위해 한 밤에 늑대와 사투를 벌이고, 음식을 훔친 동생을 죽인 테무진에게 진정한 사랑과 용기가 무엇인지 가르친다.
위대한 모성은 자식을 위해 볼모로 다른 부족에게 가는 것도 마다 않는다. 자신을 구해준 부족이 후에는 원수가 되고, 어릴 대 약혼자였던 보에티가 인질로 잡혀가서 원수의 자식을 낳는 또다른 운명에도 외면하거나 절망하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자비, 관용과 용서와 생명에의 존중이 너무나 애절하기 때문이다.
몽골의 변화무쌍하고 황량한 초원과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의 전체 주제에 한결 다가서게 하는 소도구가 된다. 다만 징기스칸 하면 몽골이 떠오르고 몽골 하면 광활한 초원이 떠오르는데 주활영 시기가 가을과 겨울이라서 그런지 푸른 초원과 거기에 깔려있는 기상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자신의 정절을 희생하면서까지 테무진이 칸이 될 수 있도록 도왔지만 버림받을 위기에 부딪는 보에티. 강가에서 목숨을 버리려는 그녀를 만나는 라스트 신에서 그는 비로소 드넓은 초원을 자신의 마음으로 가질 수 있데 된 것이다.
마리아의 『네』가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낼 수 있도록 한 것처럼, 어머니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이 영화는 「진정한 지도자는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복음의 진리를 새삼스럽게 각인시켜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