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중림동(약현)성당 화재 이모저모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0-06-28 00:00:00 수정일 2010-06-28 00:00:00 발행일 1998-02-22 제 2090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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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넘게 울리던 종소리마저 화염 속으로”
제대 천장 등 내부와 종탑 전소
종 14처 요셉상 성모상도 훼손
“6.25때도 끄떡없었는데” 침통
불길 연기 뚫고 성합성체 구출
“방화범ㆍ불우이웃 위해 기도를”
화재 발생 경위

맨 처음 화재가 목격된 것은 9시12분경. 본당 산악회 회원 10여 명이 사무실 앞에 모여 있다가 제대 뒤편 스테인드글라스에 시뻘건 불꽃이 그리고 성당 뒤쪽과 종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불을 발견한 조남석(요셉)씨 등은 곧바로 화재발생 신고를 요청하며 관리인 한통원(시몬)씨에게 알렸고 한씨는 성당내 제의방전원을 차단한 후 휴대용 분말 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했으나 이미 성당 내부 전체로 화재가 번져 역부족이었다.

이에 성당을 빠져나와 동쪽 문을 통해 내부로 재진입을 시도하는 순간 문 앞에 방화범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끌어냈고 그는 중림동 파출소에 인계됐다. 발견 당시 방화범 장모(33세)씨는 제대 위에 놓여 있던 십자고상을 품에 안고 있었다.

장씨는 이날 오전 9시경. 10시 미사 때문에 열어둔 문을 통해 성당에 침입. 방석 등에 지니고 있는 라이터를 이용해 제대 부근에 방화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9시20분경 소방차가 도착, 진화를 시작했으나 불은 이미 내부를 모두 태우고 종탑까지 번지고 있던 상태였다.

서울시 소방본부는 소방차 29대, 소방관 1백20명을 동원해 진화작업에 나섰으나 언덕 위에 위치한 성당 마당으로 진입하는 길이 좁아 대형소방차가 화재 현장까지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이 때문에 종탑 위로 번지기 시작한 불을 진화하기 위한 사다리차가 늦게 도착, 불길이 종탑을 완전히 태우는 것을 막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화재 발견후 1시간 반이 지난 10시40분경 불은 모두 꺼졌고 소식을 듣고 모여든 신자들은 시꺼멓게 그을리고 종탑이 무너져 내린 성당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피해 상황

이날 불로 입은 재산상의 피해도 피해이지만 약현성당은 그 자체가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한국교회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생각해볼 때 더욱 안타까움을 갖게 한다.

약현성당은 1892년 준공돼 올해 1백7년이 되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조 성당으로 명동성당보다 5년 앞서 건축된 후 한국교회 건축의 모델로 여겨져 왔다.

이날 화재는 1백20평의 성당내부를 모두 태워 제대와 총 4백석 규모 장궤틀 72개, 천장 목재와 종탑의 목조 부분이 불에 탔고 1976년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과 전자오르간도 모두 소실됐다.

1892년 설치된 14처, 요셉상, 성모상도 훼손됐고 프랑스에서 주조된 것으로 1893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설치된 서양종(4백42kg)도 심하게 그을리고 화염에 가열돼 앞으로 타종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감실 일부가 불에 그을렸으나 본당 보좌 신부와 일부 신자들이 불길과 연기를 뚫고 들어가 성합과 성체는 무사히 꺼내 왔다.

방화범과 방화동기

방화후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붙잡힌 방화범 장모(남ㆍ33세ㆍ주거부정)씨는 어려서 우측 손에 심한 화상을 입은 조막손 불구자로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정한 주거와 직업이 없이 서울역 근처에서 기거하는 행려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장씨는 방화 당시 술에 취해 있었던 신분증과 소지하지 않았으며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횡설수설해 정확한 방화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침착한 대처

화재가 발생하자 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신자들이 즉시 뛰어나와 거센 불길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40여 년간 약현성당을 다녔다는 한 신자는 『가슴이 터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특히 1백여 년간 매일 세 차례씩 울려온 종탑이 무너지자 신자들은 탄식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 총회장 전길택(파스칼ㆍ58)씨는 『종탑만이라도 성했으면 좋겠다』며 가슴을 졸이다가 결국 종탑 일부가 무너져 내리자 『그 험했던 6ㆍ25때에도 끄떡없었던 성당이 이렇게 허무하게 불타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내부가 완전히 불타버렸음에도 성체와 성합은 무사히 꺼낸데에는 몸을 사리지 않고 화염과 연기 속을 뚫고 들어간 본당 신부와 신자들 덕분.

화재 발생 후 소화기를 들고 성당 안으로 진입해 불을 끄기 위해 애쓰던 신자들 중 한명우(야고보)씨와 서정근(미카엘)씨는 감실만은 불에 타지 않고 잔뜩 그을려만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문을 열어 성합을 꺼내 들고 나와 성체가 불에 타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화재 현장에서 신자들이 보여준 침착함과 마음 씀씀이는 성당이 불에 타는 안타까움 속에서도 따뜻함을 자아냈다. 신자들은 추운 날씨에 차디찬 물을 뒤집어쓰면서 화재 진화에 애썼던 소방관들에게 따뜻한 음료를 들어 나르고 불이 모두 꺼진 뒤에는 분주하게 밥을 지어 일일이 수고한 관계자들을 식당으로 이끌어 식사를 제공했다.

화재가 방화범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신자들은 처음으로 『그러게 처음부터 부랑자들이 성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며 적개심을 보였으나 이는 곧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더 잘 돌봐야 한다는 다짐으로 변했다.

불이 어느 정도 잡히면서 순교자기념관성당으로 모인 신자들은 묵주의 기도를 바치면서 방화범에 대한 미움을 털어냈다. 이 자리에서 주임 임상무 신부는 『이런 일이 일어난 데에는 어려운 이들을 더욱 잘 돌보지 못한 우리 자신의 책임도 있다』며 『불을 지른 청년을 포함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자』고 말했다.

실제로 약현성당에서는 매주 주일미사 후 국수나누기 등을 통해 인근 행려자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해왔다.

김수환 추기경은 화재 발생 하루 뒤인 12일 오전 11시30분 현장을 방문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피해 현장을 둘러보던 김추기경은 할 말을 잊은 듯 신자들에게 『마음이 아프시겠습니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넬 뿐이었다. 김추기경은 사제관에서 주임신부로부터 자세한 피해 상황에 대한 보고를 들었으며 이에 앞서 본당 전 신자들이 단결해 어려움을 이겨나가며 행려자 등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한다고 당부했다.

대책방안

현재 본당에서는 주임신부와 총회장을 비롯해 사목위주 중 분과장들 중심으로 15명 정도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복구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아직 실제적인 복구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성당 골격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으나 붕괴 위험 등에 대비, 안전진단을 실시해야 함에 따라 복구대책은 그 결과에 따라 수립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