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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제수씨에게/ 우광호 취재팀장

우광호 취재팀장
입력일 2009-11-04 10:32:00 수정일 2009-11-04 10:32:00 발행일 2009-11-08 제 267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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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씨에게.

결혼 1년이 지나도록 아기 소식이 없어서 내심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쁩니다. 생명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생명을 맞아들이고, 또 그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행복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생명은 마치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생명은 엄마 아빠 몰래 얼른 뒤집기를 하고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쳐다보며 환하게 웃을 것입니다. 생명은 누가 붙잡아 주면 발에 힘을 주고 다리를 쭉 뻗을 것입니다. 생명은 품에서 내리기 싫어 착 달라붙어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은 웃고 울다 지치면 엄마의 배 위에 누워 곤하게 자곤 할 것입니다. 엄마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 팔에 힘을 꽉 줄 것입니다. 살짝 느껴지는 그 압박감과 품에 착 안기는 기분이 무척 상쾌할 것입니다.

제수씨는 그 생명이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울 것입니다. 설사 아기가 눈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 눈은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생명과 사랑만 있지 않습니다. 불의와 시기, 질투, 분노도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걱정이 많습니다. 임신 중에는 태어날 아기가 잘 볼 수 있을지, 잘 듣고 말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태어난 후에는 목을 잘 가눌지, 잘 걸을지 걱정합니다. 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공부는 잘할지, 친구는 잘 사귈지 걱정하게 됩니다. 성장해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공경할지, 부모를 존경할지, 이웃을 사랑할지 걱정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레네오 성인은 “인간은 씨앗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은 하느님과 닮은 인간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꽃피워 나가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기도 안에서 생명을 따르는 삶을 살면 됩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요한 15,4 참조).

태어날 아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위해 기도합니다.

“고요함의 가치를 알게 하시어 촛불 하나에 의지해 가만히 무릎 꿇고 기도하는 행복을 알게 하소서. 나의 행복을 우선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경쟁에 뒤처지지 않을 성실함을 주시고, 경쟁에서 뒤처지더라도 편안할 수 있는 의연함을 주소서. 선한 사람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시고, 약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며, 어려운 이웃에게 부드러운 말과 따뜻한 마음으로 돕게 하소서. 좌절과 절망 또한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과정임을 알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소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하시고, 그 행복을 평생 동안 간직하다 마침내 당신 품안에서 웃으며 삶을 마치게 하소서. 아멘.”

과거에는 “만약 나에게 제수씨가 생긴다면 매일 업고 다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동생의 반려자인데, 어찌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제수씨를 만나고 보니, 아주버니와 제수처럼 어려운 관계가 없더군요. 호칭도 아내의 여동생은 그냥 ‘처제’지만 동생의 아내에게는 ‘제수씨’라며 꼬박꼬박 ‘씨’를 붙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생명을 품에 안아 올리는 그 날, 제수씨를 등에 업고 덩실덩실 춤 한번 추고 싶습니다.

우광호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