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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영 신부의 생명칼럼(15) 불임 수술은 정당한가?

입력일 2005-11-06 10:17:00 수정일 2005-11-06 1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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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치료 예방 위해서도 불가”

불임 수술을 통하여 새 생명을 출산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상실시킴으로써 각 개별 행위뿐만 아니라 전체 유기체 자체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를 한다면, 이를 기꺼이 생명에 봉사하려는 단순한 소망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수단으로든 또는 목적 자체로든 출산을 불가능하게 하려는 직접 불임 수술은 도덕규범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합법적이지 못하다. 어떠한 ‘징후’를 이유로 내세우는 불임 수술이라 하더라도 공공 권위가 이를 허가할 권리는 없으며, 무고한 인간 생명에 해를 끼치는 불임 수술을 지시하거나 수술할 권리는 더더욱 없다.

따라서 생식 능력을 생식 불능으로 만드는 것이 그 본질상 유일하고 직접적인 효과인 모든 불임 수술은 직접 불임 수술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임신 결과 예견되거나 염려되는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치료 또는 예방하려는, 주관적으로는 올바른 의도나 동기라 하더라도 불임 수술은 절대적으로 금지된다. 또한 생식 능력 자체에 대한 불임 수술은 언제나 거의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각 개별 행위에서 이루어지는 불임 시도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금지된다. 불임 수술은 인간의 존엄과 불가침성을 침해하기 때문에, 어떠한 공공 권위도 불임 수술을 공공선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고 정당화할 수 없다.

1994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는 ‘자궁 분리 관련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통해 불임 수술에 대한 구체적인 물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질문 1:자궁이 심각하게 손상되어(예를 들면, 출산 또는 제왕 절개 중에)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에 즉각적이고 중대한 위협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의학적 판단으로써 자궁을 완전히 제거(자궁 절제)해야 할 경우, 그 결과로써 생길 수 있는 여성의 영구 불임에도 이 수술을 감행하는 것이 정당한가?

답변:정당하다.

질문 2: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에 당장은 위험이 없다 하더라도 장차 임신을 하게 되는 경우 산모에게 위험이 미칠 만큼, 어떤 경우에는 매우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을 만큼, 자궁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예를 들면, 여러 번의 제왕 절개 수술 때문에), 임신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미래의 위험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하여 자궁을 제거하는 것(자궁 절제)이 정당한가?

답변:정당하지 않다.

질문 3:위의 2번에 진술된 상황에서, 자궁 절제 수술 대신에, 의사에게는 한층 더 간단하고 여성에게는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임신 가능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불임을 돌이킬 수도 있는, 역시 ‘자궁 분리’라고 불리는 난관 결찰을 하는 것은 정당한가?

답변:정당하지 않다.

그리스도교 전통 윤리신학에서는 직접 피임과 간접 피임을 분명히 구분해서 가르쳐 왔다. 곧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지속적인 불임을 유발시키는 직접적인 의도를 가지는 모든 피임 방법은 명백히 비윤리적이라고 가르쳐 왔다. 반면 유기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되는 피임 방법은 결과적으로 불임을 유발시키기도 하지만, 치료의 한 방법으로서 의도적 피임은 정당하다고 가르쳐 왔다.

앞서 여러 문헌들에서 가톨릭 교회의 불임 수술에 관한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기에, 끝으로 불임 수술에 대한 윤리적 평가만 몇 가지 제시하겠다.

첫째는 인격의 불가침해성이다. 곧 인간은 거저 받은, 선물로 받은 자신의 생명뿐 아니라 자신의 육체에 대해서 절대적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주인이 아니라 단지 충실한 관리자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간 존재의 단일성이다. 곧 인간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영혼과 육체가 일치된 하나의 단일한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는 자신이 객체로 취급할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육체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당한 치료 목적 외에 자의로 자신의 육체에 상해를 준다면 그것은 자신의 본성을 스스로 거스르는 행위이다.

셋째는 성의 이중적 의미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분명 불임 수술은 성의 일치의 의미와 출산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분리시키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곧 성의 의미에서 출산의 의미를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직접적으로 거스르는 행위인 것이다.

넷째는 인간의 윤리적 선은 인간의 가장 큰 선이다. 무엇보다도 불임 수술의 문제를 단지 생물학적 육체적 관점에서만 보아서는 안 되며, 전체 인간적인 관점, 곧 인간 존엄성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불임 수술은 육체적 선을 거스르는 행위일 뿐 아니라 인간 고유의 실재를 희생시키는 행위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면서 인간의 윤리적 선을 파괴시키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행위자(불임 수술을 의도하는 부부)의 의도와 상황도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 규범을 결코 소홀히 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지속적 불임의 상태가 주는 심리적 영향(성의 남용 등)을 고려해 볼 때 영구 불임 수술의 죄성은 더욱 크다 하겠다.

이창영 신부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본지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