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새 신부의 이상론 / 하재별 신부

하재별 신부·신부교구
입력일 2021-01-20 15:47:19 수정일 2021-01-20 15:47:19 발행일 1970-07-05 제 725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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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꿈으로…
3년 간의 군대생활과 십여 년 간의 신학교 생활을 보내고 만 29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제직이란 오솔길을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새 시대가 낳는 여러 가지 난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부족한 몸이 사제가 된다는 사실에 두려운 감이 들지만 그동안 저의 성숙을 위해 기도와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여러분들을 생각할 때 두려움은 용기와 감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길은 누가 뭐래도 사랑의 보금자리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이상에 젖어 있을 수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사제로서 교회의 직무를 수행해야 될 마당에 이르러 여러분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힘입어 키워나올 수 있었던 이상들을 피력해 보겠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이라 비웃기 전에, 세상 모르고 까부는 철부지라 비난하기 전에 이상을 품고 출발하는 단순한 저의 마음을 깨우쳐 주시고 채찍질해 주시기 바랍니다.

①「주교를 중심으로 한 사랑의 단체」라는 의식을 신자 개인의 마음 속까지 침투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신자들을 단위별로 단체에 가입케 하고 그 단체의 발전에 자신의 노력을 최대한 기울여 보겠습니다.

②그리스도 평화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의 성화를 위하여 성가정 운동을 일으키고 외적 행사를 거행하겠습니다. 한편 신자 가정의 경제적 자립을 위하여 협동조합 운동과 지역사회 개발에 힘씀으로써 그리스도 정신이 세상에서 패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겠습니다.

③교회 운영에 전 신자가 참여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고 모든 신자가「내교회는 내 손으로」라는 교회의식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④청년들의 정신적 교육을 위하여 교회를 최대한 개방하고 사제관을 그들의 안식처며 교양의 산실이 되도록 공동 연구와 활동의 터전으로 제공하겠습니다.

⑤교회의 보다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위해 이웃 교회와 공동 행사 및 사업을 시도하여 사회 정화에 손을 잡고 노력하겠습니다.

⑥평신자 사도직 사명의 완수를 위하여 모든 신자가 매년「1인 1명 전교」의 정신으로 살아가도록 권장하겠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이상에 그쳐 버려 실없이 증발해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판단 능력에 비하여 이상이 비대해 있는 것이 젊은이의 정상이라는 사실을 깊이 느껴 주시며 젊은이의 소신을 현실에 알맞게 지도하고 더욱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실 때 새로 나서는 약하디약한 젊은 사제는 교회의 믿음직스러운 역군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똑같은 이상을 가지고 나가서 처참하게 짓밟힌 쓰라린 경험들을 수없이 듣더라도 이상이 없는 지혜보다는 희생을 요구하는 이상에 매력이 가는 것이 젊은이의 특징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버림 받은 자기 양을 위하여 생명까지도 터무니 없이 버리겠다는(요한복음 10장 14절) 성경 말씀에 따라 단순하게 뛰쳐 나가는 젊은 사제의 앞날을 선배 신부님들의 이끄심과 신자들의 후원이 끝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기를 빌 뿐입니다. 이것이 서품을 위하는 저의 기도입니다.

하재별 신부·신부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