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14일) 밤부터 해산 당일 (15일)새벽까지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사제단이 장시간에 걸쳐 해산을 설득했지만 농성중인 학생, 시민들은 계속「잔류」를 주장하고….
결국「어떻게 하는 것이 민주화를 위해 현명한가」라는 질문이 주효했다고 생각됩니다』
지난 6월 10일부터 15일까지 6일간 계속된 명동성당 시위에서 교회와 시위대간의 중재역을 맡아 온 명동본당 보좌 양권식 신부는 어려웠던 해산결정과정을 전하면서 일단 성당이 평온을 되찾은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5일 동안 한잠도 자지 못해 까칠한 모습을 한 채 성당주변 정리에 바쁜 시간을 보낸 양 신부는『이번 사건을 바라본 신자들이 교회의 성역과 권위가 실추된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는데 오히려 교회의 단결을 촉구하고 교회의 신뢰를 확인시켜 주었다고 생각한다』며 『실제로 시위대가 교회를 뒷전에 두고 투쟁만을 부르짖을 수 있었지만 사제들의 권유에 잘 따랐다는 사실에서도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제단과 시위대 간에 중재역을 맡게 된 배경에 대해 『학생운동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양신부는 『사제들의 현실감각과 학생들의 현실감각이 달라 의견수합에 어려움이 따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제들이 신뢰를 줄 수 있었기에 무리는 없었다』고 전했다.
양신부는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며 사랑을 지향하지 않는 정의는 불의를 가져다 줄 뿐』이라면서 『시위대가 농성 도중 가진 미사를 통해 비폭력으로 나아갔듯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에도 새로운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제들과 수녀들의 기도가 이번 사건의 원만한 해결에 구심점이 됐다고 말한 양신부는 『명동성당이 개방돼있는 곳이기에 앞으로 또 다른 시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명동성당이 모든 민주화의 열기를 담보할 수도 없다』며 명동성당이 시위의 명소가 되지 않을까」라는 주위의 우려를 불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