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기획/특집

미사통상문 최종 개정안에 대해 ( 1)

양성ㆍ서울 대림동본당 전례위원
입력일 2019-07-17 16:27:39 수정일 2019-07-17 16:27:39 발행일 1990-10-14 제 1725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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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 등 거쳐 폭넓은 여론수렴 필요
호격존칭 「…님」은 종전 「…여」가 바람직
주교회의 산하 전례위원회가 그간 심혈을 기울여 「미사통상문 최종개정안」을 마련한데 대해 먼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개정안의 많은 부분은 현대감각에 맞게 잘된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부분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어 수정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각론에 앞서 미사통상문은 신자들의 영성은 물론 민족의 복음화와 국민적사고의 형성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강조하지 않을수 없다. 가장 아름답고 흠없는 기도문을 만들어야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전례위훤회는 좀더 많은 여론을 수렴해야할 것이다.

독자들의 견해와 계속 상충되는 부분은 묵살하거나 미어붙이지말고 일단 공청회나 지상토론 등을 거쳐 최소한의 합의를 얻은후 주교회의에 상정함이 마땅할 것이다. 몇년전 가톨릭성가의 편찬과정에서 일반에게 공개됨이 없이 독주한 대가가 어떤 결과를 빚었는지 그 후유증이 어떤지 깊이 살필 필요가 있다. 이토록 중대한 작업을 소수가 완벽히 해낼수 있다고 과신해서는 안된다.

한편 모든 교회기관지는 수시로 작업과정을 교우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인기없는 프로그램 이라고 외면한다면 어떻게 교회언론임을 자처할수 있겠는가? 또한 독자들은 많은 기도와 연구속에 참으로 쓸만한 의견을 개진하여 일조하여야할 것이다. 본고의 의도는 이것일 뿐, 결코 전례위원들의 노고와 업적을 훼손하려는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거시적 관점에서 개정안의 문제점은 과거의 잘된 부분은 살리고 미흡한 부분만 보완하는 온고 지신의 원리를 존중하지 않은데 있다. 용어와 패턴의 맹목적인 변경은 가히 혁명투사적인데 일부라도 방향을 잘못잡으면 기도문 전체를 맥빠지게 하거나 망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4쪽 대영광송을 살펴본다. 『땅에서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평화, 주천주 하늘의 임금님…외아들 예수그리스도님,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이 하시는 주님…홀로 드높으신 예수그리스도님…』12쪽『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는 종전의 것은『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였다. 49쪽『주님、 비오니…』는 종전에는 『주여, 비오니』였고 75쪽『생명의 천주성자 주 예수 그리스도님…』은 종전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여…』였다.

모든 부문에서 「여」를 「님」으로 바꾼것은 일종의 혁명인데 이것이 문제다. 2백년간「주여」「그리스도여」를 써온 역사성을 외면하고 하루아침에 「주님」「그리스도님」의 스타일로 바꿀만한 이유가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가? 「님」만이 호격의 존칭이라면 개신교에서조차 「주여」「그리스도여」라고 하는것은 존칭을 몰라서인가. 앞으로 성호경도 『성부님과 성자님과 성령님의 이름으로』로 바꾸어야 될것인가?

찬미와 청원의 대상으로서 「주여」라는 말이 풍기는 단순성과 신뢰성은 「주님」보다 더 강열하고 호소력이 있다고 본다. 개정안의 모든 부문에서 이러한 경우의 「님」은 「여」로 환원시켜야할 것을 거듭 주장한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어휘나 표현의 질적문제 또는 격조와 관련되는 문제이다. 「응답송」을 「화답송」으로 「성찬의 전례」를 「감사전례」로, 「신자들의 기도」를 「보편기도」로 바꾸거나 『강복하소서』를 『축복하여 주십시오』로,『형제들이여…』를 『도움이 되게하시기를 빕니다』등으로 바꾼 것은 전례위원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잘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후술한다.

아름다운 기도는 본래 많은 변론을 요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진실하고 성스러워 물흐르듯 막힘이 없고 모든이가 주님께 저절로 이끌려지는 것이다. 예술가가 조각품을 만드는 정도의 성의도 없이 기도문을 다루면 실패한다. 이런 인식하에 세부적으로 고찰한다.

1쪽「인사」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치가 여러분과 함께』는 성삼위의 순서를 감안할때 산만한 인상을 주므로 종전대로 『사랑을 베푸시는 성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하든가 『천주 성부의 사랑과 성자 예수그 리스도의 은총과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치가 여러분과 함께』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쪽 「참회」에서 『교우 여러분, 거룩한 신비에 합당하게…』는 「신비」대신 종전대로「미사」로 함이 났다. 신비란 너무 막연하여 미사의 준비자세를 일깨우는데는 부적당하다. 구원사건의 신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굳이 따진다면 우리 주위에 「신비」아닌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사죄경」후 『전능하신 천주께서는…』은『…천주님』으로 간결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께서는」은 대화체에 많이 쓰는 표현이고 기도문에서는 긴 감이 있다.

『주 하느님, 저희를 가엾이 여기소서』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해야한다. 전례위원회의 견해에 의하면 「불쌍히」는 동정이고 「가엾이」는 연민이므로 「가엾이」가 낫다는 것인데 국어사전을 보면 「불쌍하다」는 가엾고 애처롭다의 뜻으로, 보다 포괄적이다. 무엇보다 기도문의 격조와 그동안 무리없이 써온 점으로 볼때 「불쌍히)가 더 훌륭한 표현으로 본다.

3쪽 「청원기도」에서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는 역시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해야한다. 「자비를 베품」도 사실상 막연한 표현인데 그보다는 직접적이고 호소력이 강한 『불쌍히 여기소서』를 계속 사용함이 소망스럽다. 명분이 없는 바꿈은 극력 자제해야한다.

4쪽 대영광송은 기도문자체가 무기력하게 된 대표적 사례이나 「하늘 높은데서는」「주님을 기리나이다」「주님을 흠숭하나이다」「주님 영광 크시오니」「저희의 기도를…」의 다섯부분은 평가를 받을만 하므로 종전의 대영광송에 이 부분만 대체시키면 좋을 것이다.

<계속>

양성ㆍ서울 대림동본당 전례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