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사람

태백산맥 폐광촌본당 탐문기 / 이계광 신부

이계광 신부·서울 여의도본당 주임
입력일 2017-08-08 11:56:30 수정일 2017-08-08 11:56:30 발행일 1992-11-08 제 1829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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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도시에 생명주는 교회모습
고아ㆍ양로원 건립하려 동분서주
의욕 용기 배가위해 나눔가져야
10월 22일(목) 아침 8시 사목회 장학담당 심필구(비오) 회장과 같이 서울을 출발해 강원도 횡성을 거쳐 오후 1시경 평창읍에 도착했습니다. 연이어 정선, 함백, 사북의 각 성당을 방문했으며 태백시의 황지성당에 도착한 것은 거의 밤 10시가 가까워서였습니다.

밤 9시 해발 1천2백m의 고한고지를 넘을 때는 무서움도 있었습니다. 황지성당 사제관에서 그날 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8시 상동성당과 장성성당을 거쳐 도계성당으로, 그리고 동해시 북평성당을 방문했습니다. 도중 자동차 접촉사고로 정비공장에서 초조한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오후 4시 동해시를 출발해서 우리성당 여의도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가 좀 넘어서였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9개 성당중 동해시 북평 성당을 제외하고는 전부가 과거 전성기에 흥청대던 탄광도시요 광산부락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시책인 소위 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이 지역 대부분의 탄광과 광산이 폐쇄되거나 폐업을 했습니다. 따라서 인구 3만의 시가 단 1만으로, 인구 2만의 읍이 단 9천으로 급속히 공동화되고 활폐화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남아 있는 인구는 오도가도 못하는 탄광 이외에는, 광부의 일 말고는 다른 생업수단과 방법이 없는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생계는 더욱 어렵고 난감할 뿐이었습니다.

이에 이 폐광지대 도시의 신자들은 또 본당들은 그리고 사제와 수녀님들은 또 어떠했겠습니까?

교회는 민중 속에 있고 또 도시속에 있는 만큼 이 민중들의, 이 도시들의 시름과 아픔은 바로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끝까지, 사제와 수녀들은 끝까지 그들의 불빛이 되고 수호자가 되어 끝까지 그들과 갈이 있어야하며 그들의 편이 되어 주어야 했습니다. 특히 직접적으로 신앙적으로 그들의 양떼요 자식들인 신자들에게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 폐광지대의 여러 성당을 방문하게 된것은 우리본당이 펼치고 있는 작은 이웃돕기 장학사업에 대해 그간 각 본당이 베풀어준 호의와 협조에 대해 감사드리기 위해 또 그 성과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상담을 갖기 위해서 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곳 본당의 여러 사제들과 수녀님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하나 같은 그 발랄하고 생기에 넘치는 의혹과 용기와 사명의식에 접하면서 긴 상담과 문답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즉시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거의가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아주 젊거나 그냥 젊은분들이었습니다.

공동화되어가고 폐허화되어가는 그 도시 그 부락속에서 의기소침하고 불안해하는 그 민중과 그 교구민을 위해서 아직도 지금도 무엇인가를 새로이 계획하고 열심히 또 꾸준히 성무와 봉사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9개 본당 전체에 신자수는 우리 여의도 본당 5∼6천 명의 그것보다 작았습니다. 3백명이던 신자수가 1백명이 되었는데도 역시 전과같이 주일에는 3번의 미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5명의 예비자를 위해서도 교리강좌는 계속되었고 30명의 어린이들을 위해 3개반의 주일학교는 전과 다름없이 지속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고아원과 양로원을 세우기 위해 지역 관공서를 찾아다니고 서울의 여러 본당을 찾아나서는 의욕적인 신부님도 만났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도 그가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한 그가 하느님의 자녀인 한 교회에게는, 사제에게는 그가 소중하며 그 하나를 위해 이곳의 교회는 그리고 이곳의 사제는 보람을 갖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몰락의 도시, 찌꺼기 인생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이요,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의 교회와 이곳의 수녀님과 신부님들은 몰락속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 찌꺼기들 속에 참 생명을 심어주고 건설하려는 의욕과 노력을 보았습니다.

스스로는 부족하면서도 주는 교회, 나누는 교회로, 끝까지 서있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9개성당 어디에도 성당사무실은 있어도 사무장은 없었습니다. 주방은 있어도 식복사는 없었습니다. 그의 모두가 시간제 파출부 뿐이었습니다. 만능신부 만능수녀 아니 만능사목위원 만능회장들 뿐이었습니다.

서울의 여러 본당을 서울의 여러 신자들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양적인 팽창 속에서 하나의 소중함을 잊어가고 있으며 영의 고귀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아무리 크고 많은 것도, 아름답고 위대한 것도 그 하나가 모이고 쌓인 것들이요, 그 알맹이와 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잊었던 그 하나를, 그 진실한 하나를 다시 기억하고 다시 발견하기 위해 우리들의 그 많은 것들을 그들과 나누며 그들에게 보냅시다.

이제 우리들의 잃어버린 빼았긴 그 알맹이를 그 영을 다시 찾고 다시 얻기 위해 우리들의 그 겉치레에, 그 아름답고 위대한 것들을 다 벗어서 그들과 나누며 그들에게 보냅시다.

그래서 우리도 그들과 같이 그곳의 신부님 수녀님들처럼, 신자들처럼 발랄하고 생기넘치는 의욕과 용기와 보람을 우리들의 삶 속에 우리들의 믿음 속에 다시 가져 봅시다.

끝으로 이곳 폐광지대 9개 본당의 신부님 수녀님들로부터 여의도 본당 모든 신자들과 장학회에 보내는 깊은 감사와 뜨거운 격려의 말씀을 전하면서 반드시 우리의 장학사업은 계속되어야 하며 가장 필요하고 보람있는 사업이라는 저 본당신부의 확신을 여러 신자들에게 피력하는 바입니다.

이계광 신부·서울 여의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