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에 대한 각 종교인들의 태도를 보면 통일 이후 북한에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남한에 살고 있는 소수의 탈북자들이지만 그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선교 비법은 단 하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예수님의 육화를 사는 것이다.
이 육화에는 모든 사상ㆍ이념ㆍ선입견 등이 없으며, 다만 그들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이다. 종교 선택에의 강요가 아니라 그들 처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우선할 때, 그들의 내면에는 종교의 핵심이 깊숙이 자리하게 됨을 본다. 그러나 탈북자들을 타 종교보다 먼저 자기 종교로 끌어 들이려는 뜨거운 선교경쟁, 탈북자를 통해 자기 종교나 교회를 내세우는 먼저 낀 선교, 믿으면 돕겠다고 흥정(?)하는 선교사업, 쉬고 싶은 시간인데도 찾아와 믿음을 강요하는 놀랄만한 선교열정, 종교를 가지라고 강요하면서 탈북자들을 무시하는 태도 등을 통해 예수님은 탈북자들에게 귀찮기만 한 존재였다.
예수님이라면 그들에게 어떻게 아버지를 전하실까? 아마 예수님은 낯선 사회를 살아가는 그들처럼 이 남한사회를 낯설어 하실 것 같다. 그리고 그분은 따뜻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보잘 것 없는 형제 하나로 지내실 것 같다. 또한 그분은 북한에서 살아 온 당신들의 삶은 다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살아 갈 수 밖에 없었던 최선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이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오늘이 있기까지 보살펴 주신 분이 하느님이심을 아직은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들과 함께 계신 하느님의 손길을 보는 우리는 탈북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