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데스크칼럼] 여 탤런트의 죽음과 승자독식 /서상덕 취재팀장

서상덕 취재팀장
입력일 2009-04-15 00:00:00 수정일 2009-04-15 00:00:00 발행일 2009-04-19 제 2644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자살로 삶을 마감한 한 여자탤런트를 둘러싼 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웃 일본과 중국은 물론 멀리 미국에서도 연일 대서특필할 정도여서 그 여진이 얼마나 이어질 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이 사건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도 천차만별이다. “쯧쯧, 어쩌다가…”하는 동정에서부터 “원래 그런 거지”하는 회의성 대꾸에, “× 팔린다”는 식의 말까지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건의 이면에 놓인 현실을 은근쓸쩍 부러워하는 시선들이 느껴지는 건 웬일일까. 이런 면에서 이 사건에는 숱한 부조리와 모순이 판치는 현실에 길들여지거나 무감각해진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한 마디로 이 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이 사건을 둘러싼 현실에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부조리는 지도층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인간존엄성에 대한 무감각이다. 우리 사회에서 연예계의 여성들이 권력을 쥔 이들의 노리개가 되고 있다는 점이 전혀 새로운 사실이 되지 못하게 된지는 이미 오래다. 다만 이른바 ‘갑’과 ‘을’의 관계에서 그 ‘갑’이 정치권력에서 자본과 언론 권력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이 새롭다면 새로울 뿐이다.

왜 이런 부조리가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지는가.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어가 보면 싸움에서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구조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연예계의 현실에서도 볼 수 있듯 수많은 이들이 연예인을 지망하지만 성공하는 이들은 극히 국한돼 있다. 문은 좁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을 때 관문을 쥐락펴락하는 수문장의 권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연예인이 되려는 이들이 많을수록 수문장 역할을 하는 언론사 관계자나 제작자, 대형 기획사 등의 힘은 커지기 마련이다. 용케 연예계에 입문한다 해도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하늘의 별 따기여서 또 다른 부조리를 확대재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모순이 연예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스포츠 분야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1등이 아닌 2등은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우승자에게 모든 부와 명예가 몰리고 1등과 2등 이하 간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1등에 버금가는 위치에 오른 이들의 노력과 이뤄낸 성과마저도 한낱 쓸모없는 것이 되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갖은 무리수를 써서라도 승자가 되고자 하는 부조리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렇듯 승자독식의 논리가 관철되는 사회에서는 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뿐더러 이상한 일로까지 치부된다. 이러한 논리가 일상이 되는 세상에서는 나눔이 있을 수 없다. 나눔이 없으니 당연히 사랑은 메마르게 되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벽은 높아만 간다. 서로가 서로를 누르지 않으면 안 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처하고 만다. 미래의 주인공인 자식들조차 성공이란 말로 포장된 이런 삶으로 밀어넣고 있으니 갈수록 삶이 각박해지는 건 자업자득인 셈이다.

승자독식 사회는 하느님 나라와는 정반대 구조를 지닌 세상이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조차 이와 닮은 구조, 비슷한 삶을 좇는 이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으니…. 주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아 죄스런 마음이 들 때가 적잖다.

인간의 오만으로 쌓아올린 승자독식이라는 바벨탑을 무너뜨리는 길은 어쩌면 너무도 단순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산 초대교회 공동체가 보여준 대로만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서상덕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