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김상옥 수녀의 성서말씀 나누기 (12) 광야에서의 방황 (민수기 15~19장)

김상옥 수녀(노틀담수녀회)
입력일 2000-06-18 06:22:00 수정일 2000-06-18 06:22:00 발행일 2000-06-18 제 2205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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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계명' 늘 기억해야
이스라엘 감사절기는 출애굽 구속사건에서 시작
주님 권위에 대항하면 비참한 죽음 뿐
“15장은 하느님께 감사제물 드리는 제사법, 16~17장은 레위가문 사이에 일어난 파벌싸움 기술”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광야생활이 시작되는 민수기 15장은 하느님께 감사제물을 드리는 제사법에 대하여 기술하고있다. 출애굽 직후에 이미 하느님께서는 예배드리는 법을 말씀하셨다. 이는 레위기 전체 안에서 볼 수 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광야생활을 시작하면서 당신 백성과 맺은 계약을 새롭게 갱신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과 맺은 언약을 기억 하고 있는지 재확인하시려는 것이다. 15장 1~21절은 감사 제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구속의 은혜를 기억(히브리어로「즈카르」) 하면서 감사를 드린다.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만이 감사를 드릴 수 있다. 이스라엘 초기 족장들의 시대에는 감사절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감사절기는 출애굽의 구속사건 속에서 시작된다. 히브리어는 명사보다 동사에 생명이 있는데 모든 단어가 동사에서 유래한다. 히브리어 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동사 중의 하나가 「즈카르」(「기억하다」 「생각하다」)이다.

에집트에서 나와 시나이산에 정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들의 자손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계획을 완수할 것인데 15장은 이 후손들에게 내려진 말씀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의식에 관한 것이다. 무엇보다 하느님과 그의 계명을 「늘 기억」해야하며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옷자락에 술을 달라고 명하고 있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도 그들의 옷단에 길다란 술을 달고 다니면서도 무거운 짐을 꾸려서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고 예수님으로 부터 위선자라는 책망을 듣게되는 복음말씀이 떠오른다 ( 마태. 23장 ).

신앙생활에서 「기억함」은 너무나 중요하다. 『너희는 이 예를 행함으로써 나를 기억하여라』. 우리는 미사 때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기억한다. 우리 전례의 핵심인 미사는 바로 세상 끝날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억하며 이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상당히 오래 전부터 나는 태어나서부터 오늘 현재까지의 나의 삶에 대하여 좋으신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하나하나 기억하며 감사를 드리고 있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감사는 드리면 드릴수록 더욱 감사할 일이 생긴다는 체험이다. 신앙생활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고 체험이다. 각자 체험해 보아야 알게될 것이다.

인간만이 기억하는 동물이요,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물이다. 우리는 「기억하다」를 「마음에 두다」로 승화시켜야한다. 하느님의 은혜를 늘 마음에 두는 자는 감사가 저절로 나올 것이다. 기억하다 (즈카르)를 강화시켜 능동사역형 동사 「마즈키르」로 변형시키면 「찬송하다」, 「기념하다」, 「분향하다」 등으로 된다. 이것은 구약 종교의 중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 이병렬, 구약 다시 보기). 좋은 기억에서 좋은 감정, 좋은 감정에서 좋은 행동, 좋은 행동에서 좋은 습관, 좋은 습관에서 좋은 인격이 형성된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마음에 새겨둘만하다.

아비람의 반역.
16~17장은 레위가문 사이에 일어난 하나의 파벌싸움 같은 것으로 코라, 다단, 아비람의 반역에 대해 기술하고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부여한 대사제 권위에 집단적으로 도전하며 반항한 사건이다. 요즘 말로 한다면 「권력 나눠먹기를」원한 것이다. 오늘 우리 교회 내에도 「코라」와 같은 신자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직분에 있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그로 인해 더 좋아 보이는 자리가 있을 것이다. 하느님보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교회일에 나서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부여한 권위에 대한 반항의 결과는 비참한 죽음 뿐이다: 『땅은 입을 벌려 그들과 집안식구들을 삼켜버렸다』라고 민수기는 기록하고있다(17, 31~32). 반면에 아론의 나무 지팡이에는 꽃이 피고, 싹이 돋고, 감복숭아 열매가 열리는 기적을 야훼께서 보여주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가문 중에 오직 아론의 가문만이 대사제로 선택되었음을 말해주는 표지이다. 19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보여준 온갖 반역적인 행위, 불평, 불만, 시기, 질투, 불신 등으로 얼룩진 것을 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정결하게 씻게 하셨다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는 거두어 간직해 두었다가 물 위에 조금 뿌려 정결케 하는 물을 만들어 정결케 하는데 사용하였다.

대사제는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불러주셨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이다. 모세는 묵묵히 『땅에 엎드렸다』(16, 4). 백성들의 잘못을 용서 청하기 위해 모세는 엎드리기에 바쁜 사람이었다. 백성들의 무지한 잘못을 위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며 엎드려 기도 드리는 새로운 모세가 현대를 살아가는 교회에 지도자로 많이 배출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김상옥 수녀(노틀담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