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수 (미카엘 , 46 , 인천 소사본당)씨와 신미영 (젬마, 40 , 서울 고양동본당)씨는 6촌간이다. 형제 많은 집에선 1년에 한번 보기도 힘든 가깝고도 먼 촌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친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낸다. 모르는 사람은 이 두사람이 친남매라고 생각한다. 외모도 닮았고 착한 성격도 비슷하다.
두사람 집안 외에는 다른 친척이 없다. 일제때 강원도 통천에서 살던 집안 어른들이 북간도로 이주했다가 해방이 되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은 신영수씨와 신미영씨 할아버지들 뿐이기 때문이다.
신영수씨 할아버지는 덕원신학교를 다니기도 했단다. 그들 신앙의 기원은 대원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그러진 두 집안에 신자 아닌 사람이 없다. 수녀인 고모도 있다.
신앙을 바탕으로 돈독한 우애가 넘치던 이 집안에 고통의 그림자가 싹튼 것은 올해 초. 조그마한 사업을 하던 신영수씨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좥만성신부전증좦이란 진단을 받았다. 수혈이다, 투석이다, 온갖 치료를 받아 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신미영씨가 투병 중이던 오빠의 소식을 들은 것은 구정때. 좬친오빠처럼 여기던 오빠가 그런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에 눈앞이 깜깜해 졌어요. 늦장가 간 오빠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신장이식」만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말에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신미영씨 친오빠. 그러나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
신미영씨는 고민에 휩싸였다. 오빠에게 새 삶을 선사하고 싶다는 마음은 「꿀떡」 같은데 자신의 신장상태가 어떨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 죽은 다음 안구를 기증하겠다는 마음은 항상 갖고 있었지만 초등학교때 앓은 신장염 때문에 과연 신장이 온전할까 하는 걱정. 또 하나는 2살때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해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
그녀는 많은 갈등을 했다고 한다. 아무도 모르게 신장검사도 해봤다. 이상 없었다. 8월 어느 비오는 날 한강고수부지에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신미영씨는 드디어 올케언니인 조례순 (아녜스, 46)에게 자기의 마음을 알렸다.
『정말 뜻밖이었죠. 시누이의 뜻이 워낙 강경해 일단 집안 어른들과 남편의 허락을 받아 오라고 했습니다. 자기 몸도 불편한데 그런 결심을 했다니 그 마음만 생각해도…』
조례순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눈물을 훔치느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 신미영씨는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신장도 이상이 없었고 미국에 사는 어머니의 허락도 받았다. 그녀의 간곡한 설득에 남편 최기호(요셉, 40)씨도 동의했다.
『「어머니께서는 하느님이 내 딸을 이렇게 좋은 일을 하게 만드는구나」하시며 내가 낳은 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격려해 주셨죠』 모든 테스트 결과 「이식 적합」 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드디어 11월27일 이식수술. 성공적이었다. 경과도 좋아 12월11일 신미영씨가 퇴원하고 이어 17일 신영수씨도 퇴원했다. 『불편한 모습으로 생활하는 미영이 모습이 항상 안타까웠는데 오히려 내가 이렇게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정말 사랑깊은 동생이랍니다』 신영수씨는 동생을 통해 얻은 새로운 삶을 정말 보람있게 살겠다며 다짐에 다짐을 한다.
지금 양집안에는 1월에 싹튼 고통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희망과 평화가 넘실거린다. 하느님께 받은 재능이 많다고 자랑하는 신미영씨.
그녀는 성가대 반주도 했고 지휘도 했다. 성가대에서 활동할 때 남편도 만났다. 「평생 아픈 다리가 되어 주겠다」고 하는 남편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을 받아서 결혼했다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기증운동에 참여하길 소망합니다. 이보다 더 훌륭한 나눔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장기기증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멋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머금는 신미영씨의 얼굴이 무척이나 싱그럽다.
▷ 취재후기
희생으로 꽃피운 희망과 평화
신미영씨는 참 밝고 쾌활했다. 한쪽 다리를 저는 것은 생활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단순한 불편함 가운데 하나지 그것이 결코 고통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녀는 현재 보험회사 생활설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피아노를 가르키다 밖으로 나다니고 싶어 직업을 옮겼단다.
그녀는 실적이 우수해 상장도 받았다. 지금은 팀장으로 어느새 보험업계의 베테랑 생활설계사가 됐다.
신영수씨를 항상 친오빠처럼 생각해 왔다는 그녀는 자기의 조그마한 희생이 이렇게 큰 평화를 가져왔다며 모든 것을 하느님 은총이라고 말하며 겸손해 했다.
그녀의 아버지 사랑은 남다르다. 이번에도 기도 중에 6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딸 자식을 소아마비에 걸리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고통받으시며 자기를 위해 헌신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아른거렸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넉넉한 사랑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죠. 이번에 장기기증을 통해 이를 실천할 수 있어 더욱 기뻐요』
장기기증. 생명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한가지 방법이다. 2천년 대희년을 목전에 둔 1999년 한해는 자신의 장기를 바텨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새 삶을 선사하는 숭고한 희생과 사랑실천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