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 담화문·사목교서·수습위 및 구호대책위 구성·사제단 성명…
교회 사회참여에 새 이정표 제시
최창무 대주교, 올해부터 5월 18일을 교구 기념일로 제정
복음 정신 입각해 5.18의 현재 의미 되살리도록 노력해야
광주 민주화운동 25돌을 맞았다. 특별히 올해는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의 선포로 5월 18일을 교구기념일로 제정함으로써 공식적인 교회기념일로 지내게 된다. 이는 국가기념일을 교회기념일로 제정한 첫 시도라는 점과, 매년 전례를 통해 광주 민주화운동을 영성적으로 재해석하고 5월의 정신을 승화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광주대교구는 앞으로 기념일을 한국교회 차원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적극 건의한다는 계획이어서 일부 지역이나 교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전 교회차원에서 5.18의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조명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1980년 5월 18일 당시부터 2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광주 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교회와 그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에 걸쳐 벌어진 광주의 아픔과 고통은 2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의 커다란 상처였으며, 80년대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적극적인 참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사건이었다.
80년 당시 10.26 사태로 빚어진 ‘안개정국’과 계엄령 아래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시위 등으로 사회가 극히 어수선했다. 이에 닥쳐올 파국을 우려한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80년 5월 9일 ‘시국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담화문에서 주교단은 정부에 대해 민주헌정 확립과 정권이양 실현 및 불의와 부정에 타협한 인사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국민에 대해서도 국가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 화해와 아량의 정신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주교단의 이러한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계엄령 해제 및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맞서 계엄당국은 5월 18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각 대학에 휴교조치를 내렸다. 계엄당국의 강경대응은 결국 광주에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유혈사태로 증폭되고, 무고한 시민까지 구타, 연행하고 끝내 총기발포로까지 확대되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됐다.
이 비극적 상황속에서 교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는 5월 23, 24일 사목교서를 각각 발표, 사태의 이성적 수습과 화해를 호소하는 한편 전국의 신자들에게 광주를 위해 특별기도를 요청했다. 또한 ‘5.18사태 수습위원회’를 구성, 김성용 신부(당시 남동본당 주임)와 조철현 신부(당시 계림동본당 주임) 등이 가톨릭측 대표로 참여하여 사태수습의 전면에 나섰다. 수습위원은 ▲계엄군의 시가 진입금지 ▲계엄군의 지나친 진압인정 ▲연행자 석방 ▲사실보도 촉구 ▲보복금지 등 8개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사태의 평화적 수습을 모색하는 한편 계엄군의 무력에 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소지한 총기반납을 서둘렀다.
또한 광주대교구는 ‘구호대책위원회’를 구성, 부상자의 치료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모든 정당이 해산되고, 모든 정치적 발언이 금지된 삼엄한 사태분위기 속에서도 광주대교구 사제단은 ‘광주사태의 진상’이라는 성명서를 발표, 군의 과잉진압을 규탄했다.
윤공희 대주교는 5월 26일과 6월 2일 당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사태수습을 위해 노력을 해온 수습위원을 포함한 연행된 시민, 학생의 석방과 진실규명을 통한 사태의 진정하고 항구적인 수습”을 요청했으며 김수환 추기경, 김남수 주교, 나길모 주교, 정진석 주교 등도 최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사태수습을 촉구했다.
한편 수습위원으로 사태 해결의 일선에 나섰던 김성용.조철현 신부는 이후 내란주요임무종사 및 방조죄라는 누명을 쓰고 징역 16년과 6년형을 선고받는 등 옥고를 치름으로써 광주시민의 고통에 온몸으로 동참하기도 했다(김신부는 82년 성탄절 특사로, 조신부는 형 면제로 풀려났다).
1980년 이후에도 광주대교구를 중심으로 전국 교구는 해마다 5.18 추모미사 봉헌을 통해 80년 5월의 민주화운동은 신군부의 정권 찬탈을 위한 시민학살에 맞서 이 나라의 자유와 민주를 지키려는 정당한 시민의거였음을 확인시켰다. 또한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문책, 사상자에 대한 보상과 치료를 통한 문제의 근원적 해결도 요구했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1997년 4월 17일 5.18 주범들에 대한 반란 및 내란죄가 확정되고 같은 달 정부에서 5월 18일을 ‘5.18 민주화운동기념일’로 제정했으며 그해 첫 기념일 행사를 가졌다. 또 2005년 5월 16일 광주 남동성당에서 개최된 5.18 25주년 기념행사에서 교구장 최창무 대주교의 선포로 5월 18일을 교구기념일로 제정함으로써 5.18을 교회 공식 전례로 기념하는 원년이 되는 뜻깊은 의미를 지니게 됐다.
아울러 1980년 5월 김성용 신부를 비롯한 12명의 민주인사가 수습대책위를 열었던 역사적 장소인 남동성당을 5.18 민주화운동 기념성당으로 선포함으로써 정부나 사회적 차원을 넘어 교회적으로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계승의 거점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할 전망이다.
최창무 대주교는 2005년 부활 담화를 통해 “우리는 5.18의 역사적 사건을 파스카의 신비로 조명하며 기억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며 “그래야 그 어두운 사건과 사실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그 많은 희생도 헛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 25주년. 25년이라는 세월로 인해 우리들 기억속에 쉽게 잊혀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가지만, 5월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그 의미를 그리스도교적인 조명과 성찰을 통해 영성화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의 몫이지 않을까 여겨진다. 또한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도 전시회나 강연회 등 대화의 장을 개설해 5.18이 지나간 과거의 사건으로만 머물지 않고 복음적 정신에 입각해 현재적 의미를 되살릴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진설명
5월 15일 교구 내 200여명의 청년과 고등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5·18 정신 계승을 위한 도보순례를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