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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양곡관리법 개정논란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3-04-11 수정일 2023-04-11 발행일 2023-04-16 제 333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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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논리 아닌 ‘생명의 터전’ 지킨다는 의미로 바라봐야
쌀값 폭락으로 안정대책 촉구
정부 매입 의무화 개정안 상정
과잉 생산·재정 부담 등 이유로
정부와 여당은 강한 반대 입장

안정적인 쌀 생산기반 마련과
농민생존권 보장 위한 개정안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나
장기적·안정적 대책 마련 절실

8개 농민단체가 연합한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이 4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가톨릭농민회를 비롯한 농민단체들이 규탄에 나섰다.

가톨릭농민회 등 8개 농민단체가 연합한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하원오·이하 농민의길)은 4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식량위기 시대임에도 식량과 농업을 전혀 책임지지 않겠다는 ‘농업포기 선언’과 다름없다”면서 “시장격리는 쌀의 생산·수급·가격보장에 대한 정부의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회가 의결한 양곡관리법 개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이 법안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촌 발전에도 도움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궁극적으로 쌀 가격을 떨어뜨려 농가소득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8월, 20㎏ 기준 산지 쌀값은 4만2522원으로 전년 수확기 5만3535원 대비 20.6%가 하락하는 등 정부가 쌀값 조사를 시작한 1977년 이후 45년 만에 최대 폭락했다. 이에 경기, 강원, 충남, 충북, 전남, 전북, 경남, 경북 등 전국 쌀 주산지 8개 광역자치단체 도지사들은 정부에 쌀값 안정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9월 15일 발표하고 정부 쌀 매입 확대와 더불어 양곡관리법 개정을 통한 정부의 쌀 수급 안정대책 의무화를 촉구했다. 지난해 9월 26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위원장 소병훈) 전체회의에서 양곡법 개정안이 상정됐지만 여당의 반발로 재논의가 결정됐다.

양곡관리법 제16조 제4항에 해당하는 개정안은 정부의 양곡매입을 ‘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에서 ‘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으로 바꾸고, ‘쌀의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수확기 쌀 가격이 평년 대비 5~8% 이상 하락할 시’ 정부가 초과 생산량 전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에 제시된 정부가 쌀을 매입하는 ‘시장격리’ 실시 기준이 임의조항이라는 한계로 소극적으로 이뤄져 그 취지와 정책 효과가 퇴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역공매 최저가입찰 방식으로 매입이 진행됨에 따라 쌀값 하락을 부추긴다는 판단에서 소병훈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은 이 같은 내용을 제안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농업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쌀 매입이 의무화될 경우 이미 생산이 넘치는 쌀의 과잉 생산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농민의 길은 기자회견에서 “농민들이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을 요구했던 이유는 식량위기 시대 쌀의 안정적인 생산기반 마련과 농민 생존권 보장이었다”며 “윤석열 정권이 있는 한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받는 것은 고사하고 식량위기 시대 국민들이 주식인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마저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가톨릭농민회는 우리 농산물에 대한 접근을 자본의 논리가 아닌 식량안보, 생명의 터전을 보전한다는 의미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전국가톨릭농민회 주잡곡위원장 진현오(안드레아)씨는 “농민 개인이 농사를 짓지만 실질적인 농산물 가격 관리는 정부 통제하에 있다”며 “공공재인 측면이 크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정부에서 우리 곡물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쌀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의 쌀 매입에 기댈 게 아니라 쌀 대신 다른 작물 농사로 전환해 쌀 생산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진씨는 “대부분 70대 중후반인 농민들이 기계화된 쌀농사에서 노동 강도가 높은 밭농사로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고 농촌의 현실을 전했다.

진씨는 “쌀 소비가 줄었다고 하지만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농산물이 삶의 중요한 요소임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며 “당장 쌀값을 올리고 내리는 일, 정부가 사느냐 마느냐의 근시안적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농촌이 유지되고 농업이 활력을 얻어 식량자급을 이뤄낼 수 있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대책이 마련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