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마리아의 종 수녀회(상)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3-02-27 수정일 2023-02-28 발행일 2023-03-05 제 333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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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해진 본당 공동체 치유하며 설립

창설자 복자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칠리에리 신부.

마리아의 종 수녀회 창설자인 복자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칠리에리 신부(1821-1893)는 이탈리아 중부 도시인 모데나(Modena) 교구의 레뇨 피날레제(Regno Finalese)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나 기숙사에서 지냈던 그는 선교사제 성소를 꿈꾸며 예수회에 입회했지만 수련기 때 병을 앓게 돼 선교의 꿈은 물론이고 수도생활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사제성소의 꿈을 계속 키워나갔고, 마침내 볼료나(Bologna)교구 사제로 서품을 받고 신학교 교수이자 영성 지도자로 활동한다. 1851년, 사제가 공석인 갈레아짜(Galeazza)본당에서 사목하게 된 페르디난도 신부. 하지만 그가 부임할 당시 갈레아짜본당은 영성적, 도덕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도 황폐해져 있었고 성당 안에 뱀굴과 두꺼비집이 득실거렸다고 전해진다. 수녀회의 초대 수녀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같이 증언했다.

“그분이 갈레아짜에 오셨을 당시 주민들은 극도로 교활하고 무지했습니다. 사람들은 겨우 성호를 그을 줄 아는 정도였고 성당은 마치 마구간 같았죠. 나무로 밝히는 등불이며, 찢기고 더러운 성물 등 모든 것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착한 신부님은 조금씩 조금씩 모든 것을 치유하셨습니다.”

지역에서 반그리스도교 사상이 확산됨에 따라 본당 신자들조차 축일을 소홀히 하고 불경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성사를 멀리했다. 하지만 페르디난도 신부는 성모님께 대한 신심과 잘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본당 신자들의 어려움과 고통에 동참하며, 늘 그들 곁에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사목에 임한다.

그는 교리교육과 설교, 고해성사를 통해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 결과 페르디난도 신부 사목 초기, 627명이었던 본당 신자들은 점차 증가해 수천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소문이 퍼져 인근 본당에서 페르디난도 신부의 강론을 들으러 왔을 정도였고, 그의 자애로운 모습을 본 신자들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를 떠올리게 하는 ‘제2의 아르스의 성자’라고 불렀다. 페르디난도 신부는 잠시 체류하러 갔던 갈레아짜본당에서 41년간 사목하다 자비로운 사목자로서의 생을 마감한다. 이후 1999년 10월 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복자로 선포됐다.

본당 사목을 하면서 수녀회 창설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그는 마리아의 종 제3회원이었던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1862년 6월 23일 수녀회를 창설하게 된다. 이 수녀회가 바로 갈레아짜의 마리아의 종 수녀회로서, 1947년 1월 27일 비오 12세 교황으로부터 교황청 설립 수녀회로 승인을 얻었다. 마리아의 종 수녀회는 복자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칠리에리 신부의 영성을 본받아 “우리는 주님의 어머니시며 종이신 마리아를 본받아 그리스도를 따른다”(회헌 109조)라는 말씀을 바탕으로 사도직에 앞장서고 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