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장발 화백의 김대건 신부 초상화 발견에 기여한 이상돈 신부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2-07-13 수정일 2022-07-13 발행일 2022-07-17 제 3303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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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과 상상으로 그린 초상화에서 신비로움 느껴”
제보 받고 한걸음에 달려가 확인해
한국교회사 전문가들과 머리 맞대
1920년 19세에 그린 그림으로 입증

지난해 10월 25일 수원교구 이천본당 주임 이상돈(에두아르도) 신부는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특별한 전화를 받았다. ‘거래처 사무실에서 가톨릭교회와 중요한 연관이 있을 것 같은 그림을 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보내왔다. 그림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이 신부는 바로 다음 날 소장자 이경우(스테파노·수원교구 분당야탑동본당)씨를 찾아갔다.

한눈에 김대건 신부 초상화로 보였다. 작품 상단 원형에 적힌 ‘AK’라는 이니셜은 ‘ANDREA’와 ‘KIM’을 표시한 것으로 보여 그 심증을 더했다. 몇 군데 무언가 날카로운 것으로 뚫린 구멍을 제외하고 작품 보존 상태는 양호했다. 마치 생전 모습처럼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비장하고도 근엄한 표정으로 서 계신 성인 모습에 이 신부는 가슴이 뛰고 벅찬 감정을 느꼈다.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에 소장된 장발(루도비코) 화백의 ‘김대건 신부’ 를 연상시키는 화풍과 이씨가 소지한 몇 가지 그림 관련 자료를 통해 이 신부는 ‘장발 화백의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맞다면 한국 천주교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낭보였다.

이 신부는 ‘초상화를 한시바삐 교회에 들여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이씨에게 “수원가톨릭대학교에 기증하자”고 제안했다. 그 뜻을 존중한 이씨는 며칠 후인 11월 3일 이천성당으로 초상화를 옮겨왔다. 이 신부는 “성당에 초상화가 모셔질 때 훼손된 빈틈으로 비치는 빛이 성인의 광채 같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다음 순서는 작품의 내막을 살피는 것이었다. 먼저 김대건 신부 연구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서울대교구 이기명 신부(프란치스코 하비에르·원로사목자)를 찾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이 신부는 검증자로 한국교회사연구소 송란희(가밀라) 연구이사를 추천했다. 작품을 접한 송 이사는 상세한 연구 논문을 작성하고 초상화가 장발 화백이 1920년 19세 때 그린 것임을 입증했다.

“처음 초상화를 대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는 이 신부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왼손에 성경책을 감싸 안고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주님의 종을 볼 수 있었고, 사제로서 척박한 이 땅의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서소문 형장을 향하는 비장한 모습은 골고타를 오르는 예수님과 같았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본적도 없는 김대건 신부님 모습을 오로지 신심과 상상으로만 그린 이 초상화에서 말할 수 없는 영성의 깊이와 신비로움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장발 화백은 청년의 기백과 신앙심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세상에 나온 군인, 마치 특전사 군인 같은 모습의 김대건 신부님을 재현해 냈습니다. 초상화가 빛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이 과정에서 내가 도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점을 긍지로 여깁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