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농민 주일 특집] 소농이 생명이다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2-07-12 수정일 2022-07-13 발행일 2022-07-17 제 330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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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힘으로 짓는 친환경 순환 농법… 기후위기에도 강하다
소농, 전통 방식의 순환 농법
화석연료·비료 의존서 벗어나
재배 농산물이 생물 먹이 되고
배설물이 다시 농작물 거름 돼
소비자 적극 구매와 동참 절실

가톨릭농민회가 주최한 손 모심기 체험에 나선 참가자들. 한국교회는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전통 방식의 순환 농법을 지향한다. 유기농으로 생산된 우리 농산물을 선택하는 신자 소비자들의 관심이 적극 요구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위원장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는 제27회를 맞는 올해 농민 주일 담화에서 오늘날 우리 농촌 사회의 희망을 소농 정책으로 제시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자본주의적인 농업 방식이 오늘날 기후위기에 직면해 요구되는 탄소중립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 강조하고, 소농들이 살아야만 식량주권과 탄소중립이라는 큰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표시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명농업을 구현하는 소농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 적은 것이 많은 것

전 세계 모든 종교들의 공통적인 가르침 중 하나가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는 교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생활 방식”을 독려하며, 다양한 종교 전통들 안에 담긴 가르침, 즉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확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생태환경 문제와 관련해 농업 부문에 있어서도 이러한 확신은 적용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7월 26일 유엔에 보낸 메시지에서 “폐쇄적이고 강력한 경제적 이해타산으로 인해 공동선과 연대, 만남의 문화라는 가치에 응답하는 식량 생산 체제의 건설을 저해하고 있다”며 인류에게 적절한 음식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경제 체제를 위해서 소농과 가족농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아 극복 위한 가족적 소농

유엔은 지난 2014년 ‘세계 가족농의 해’를 지냈다. 기아와 빈곤, 식량 안보, 영양 확보, 삶의 질 개선, 자연자원 관리, 환경 보전, 가족농업과 소농의 중요성 전파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가족농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던 유엔은 당시 농업 생산성의 획기적인 증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기아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전 세계적인 식량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와 생산 확대, 대규모 기업농을 통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글로벌한 거대 농식품업체와 기업농 일변도의 신자유주의적 농업은 오히려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의 독과점을 양산했고, 결과적으로 빈부격차와 빈곤층의 기아 상황을 더욱 심화시켰다.

산업농과 농업의 세계화는 생태환경의 문제와 함께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위기 상황을 야기하며 세계의 농업과 식량 공급 체제를 재편해왔다. 이른바 녹색혁명은 대규모 생산량에 집착해 환경을 파괴하고 생물 다양성을 위협하며 부유한 농민들에게는 유리하지만 빈곤한 농민들에게 더 큰 부채를 부담시키는 지속불가능한 농업이라는 것이 이미 체험적으로 증명됐다. 변형된 종자와 화학비료에 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농민들의 상황은 점점 더 암울해졌다.

부유한 선진국들에 의한 저개발국에 대한 대규모 농업 개발 투자는 농지수탈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경우에는 지역사회를 송두리째 파괴했다. 대부분 농업 개발 자체가 지역민들의 식량 사정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기에, 수탈과 착취의 형태가 되기 십상이었다. 지역에서는 오히려 식량 확보가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지기 일쑤였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전면적인 농식품 시장 개방과 구조조정 농업 정책의 지속으로 농업과 농촌은 폐허가 되고 있다. 여기에 갈수록 심화되는 기후변화의 영향은 기존의 농업조차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14년 유엔이 ‘세계 가족농의 해’를 정한 것은 바로 이처럼 가족농이 빈곤과 기아 극복, 식량주권과 영양 개선, 환경과 생물 다양성 보전, 지역경제와 공동체 유지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명농업

가족적 소농의 형태로 수행되는 농법은 기후위기 시대, 생태환경 문제에 대한 농업부문의 유일한 대응책이다. 인도의 농생태학자인 반다나 시바는 “유기농을 확대하고, 한 품종만을 대량으로 심는 것을 지양하여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농법”을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대기 중에 과도하게 포함되어 있는 탄소와 질소를 빼내어 깨어진 탄소 순환과 질소 순환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의 주범 중 하나가 식량 생산 및 소비와 관련된다. 그 전체 과정에서 인간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의 절반 이상이 배출된다. 가축 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을 베어버리는 것에서부터 농식품을 지구 반대편까지 운송하는 과정까지, 산업화되고 기업화된 식량 생산과 소비 체제는 대량의 온실가스를 뿜어낸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소농과 원주민 공동체에 토지를 재분배하고 지역 시장과 생태 농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활발하게 추진한다면 불과 수십 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그로써 더 이상의 산림파괴를 막아 지구환경의 보전을 담보하고, 동시에 증가한 세계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다.

기업농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전혀 새로운 물질과 종자를 만들어내 생태계를 교란시키거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를 무절제하게 사용함으로써 땅과 물을 오염시키고 훼손한다. 이에 반해 가족적 소농은 생태 농업을 중심으로 땅과 물을 살림으로써 지속가능한 농업을 가능하게 한다. 소규모이지만 지역사회의 자급에 필요한 다양한 작물을 키우고 토종종자를 지킴으로써 생물 다양성 확보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나아가 소농의 친환경 농법은 기후변화에도 더 탄력적으로 대응이 가능하다. 전통적인 농법 안에서는 다양한 작물 품종을 시간 및 공간적으로 다양하게 배치해 기르기 때문에 기후에 덜 취약하다. 반면 엄청난 생산량을 겨냥하는 기업농의 단일 품종 농업은 기후변화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 지속가능한 순환 농업에 대한 관심

소농은 단순히 농사 규모만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소농은 철 따라 씨앗을 뿌리고 그 지역의 제철 음식으로 식탁을 꾸리며 화석연료나 화학비료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연과 생명을 지키는 농사법을 의미한다. 그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전통 방식의 순환 농법이다. 즉, 자연의 힘으로 농사를 짓고, 재배된 농산물이 생물의 먹이가 되며 소화되고 남은 것은 배설되어 이는 다시 농작물의 거름이 된다. 화학비료는 이러한 순환을 저해함으로써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친환경적 순환의 고리를 끊는다.

한국교회는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전통 방식의 순환 농법을 지향한다. 온실가스와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생명농법을 통해 농업과 농촌을 지키고, 기후위기 시대 기후재난의 급박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농민들만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다. 순환적인 생명농업의 가치를 공유하고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 때로는 일반 농산물과의 가격 차이를 무릅쓰고서라도 적극적인 구매와 활용이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가톨릭농민회와 함께 유기농을 통해서 생산된 우리 농산물을 선택하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의미 역시 중요하다.

2019년 10월 12일 우리농 벼베기 체험에 나선 참가자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