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천주교 신자들도 적극 동참했다”
“항일운동에 소극적” 평가와 달라
당시 경향신문 사설 근거로 제시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6월 30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마련한 ‘나눔과 책임 정신을 실천한 종교계의 국채보상운동’ 세미나 중 발표자와 토론자 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가톨릭교회가 국채보상운동에 호의적인 입장이었고, 참여 또한 두드러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항일·독립운동에 소극적이었다는 그간의 평가와는 다른 맥락이어서 의미를 더한다.
이 같은 주장은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상임대표 신동학)가 6월 30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마련한 ‘나눔과 책임 정신을 실천한 종교계의 국채보상운동’ 세미나 중 이경규(안드레아) 나눔과책임연구소장의 발표를 통해 제기됐다.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에 진 나랏빚을 국민이 대신 갚겠다며 1907년 2월 21일 서상돈 선생(아우구스티노·1850~1913)이 발의해 전국적으로 펼쳐진 경제적 주권수호운동이다.
이 교수는 당시 경향신문의 사설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1907~1909년 발행된 경향신문 내용을 바탕으로 “다수의 천주교 신자들이 적극 참여했다”며 “액수도 상당액에 달하여 종교계 의연을 견인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1906년 천주교 조선대목구가 창간한 교회 기관지로, 훗날 초대 대구대목구장이 되는 플로리앙 드망즈 신부(1875~1938)가 사장이었다. 1911년부터는 ‘경향잡지’로 제호가 변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교수의 연구발표에 토론자로 나선 가톨릭신문 장병일(바오로) 편집국장은 경향신문 보도 집계를 바탕으로 “천주교에서는 국채보상운동에 교우촌 44곳, 사제 2명, 신자 600여 명이 참여했다”며 “개신교 약 88건, 불교계 승려·신도 586명이 참여한 것을 보면 천주교가 대거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