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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주일 특집] 세상 안에서 성소를 사는 사람들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05-03 수정일 2022-05-03 발행일 2022-05-08 제 329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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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인 성소 주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성스런 부르심인 성소(聖召) 계발과 육성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날이다.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를 증진하는 것이 성소 주일의 본래 의미다.

그러나 성소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자기 삶의 현장에서 수도회의 영성을 따르는 평신도 역시 성소자로서 열매를 수확하는 일꾼이 되고 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성소를 사는 평신도들을 만나 본다.

오순애 회장은 “나의 삶은 재속복자회 입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죽을 때까지 그 영성을 따라 살겠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 재속복자회 서울2지부 오순애(클라라) 회장

“세상 유혹 만날 때면 ‘침묵’으로 이겨냅니다”

재속복자회 서울2지부 오순애(클라라·67·인천 가좌동본당) 회장은 “재속복자회에 입회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재속복자회에서 자신의 성소를 발견하고 지키며 신앙의 궁극적 목적인 ‘거듭남’을 끊임없이 체험하고 있다.

재속복자회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가족으로, 수녀회의 영성과 복음을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 단체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창설자 무아 방유룡 신부(레오, 1900~1986), 윤병현 수녀(안드레아, 1912~2003), 홍은순 수녀(라우렌시오, 1921~2011)에 의해 1957년 설립됐다. 순교자를 현양하고 형제애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자신을 성화하여 복음적 완덕을 지향하는 것(회칙 5·6조 참조)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 3월 20일 열린 재속복자회 서울2지부 제2차 총회에 참석한 오순애 회장(가운데).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제공

오 회장이 재속복자회를 통해 거듭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본당에서 효도대학 교사로 봉사하던 2006년, 재속복자회 선배의 권유를 받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강의를 들으며 창설자 신부님의 영성 중 하나인 ‘점성(點性)정신’에 매료됐습니다. 제가 평소 늘 중요하게 생각했던 ‘작은 일에 충실하자’는 정신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점성정신을 제 삶의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점성은 가장 작은 것이면서도 모든 선, 면, 부피, 모양에 없어서는 안 될 시작이요, 마침을 나타내는 중요한 속성이다. 자신은 내세우지 않고 다른 모양이나 형상 속에 숨는 특성을 지닌다. 무(無)나 비허(卑虛), 겸손과 사랑으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도 점성으로 설명된다.

“재속복자회를 처음 만난 순간 ‘내가 있을 곳은 여기구나’라고 직감했습니다.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마음은 변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그 영성을 따라 살겠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오 회장은 지원기를 거쳐 2007년 입회, 2008년 착복(着服), 2010년 서약함으로써 재속복자회 정식회원이 됐다. “서약할 때,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눈물이 한없이 쏟아지면서 재속복자회의 한 식구가 됐다는 감격을 느꼈습니다.”

오 회장에게 ‘성소’란 무엇일까. “성소는 첫째 주님의 부르심이며, 둘째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과 그 응답에 맞는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소를 사는 제 삶은 재속복자회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성소를 산다는 것은 기쁨이지만 세상 안에서 ‘유혹’도 따른다. “살다 보면 여러 유혹이 당연히 있습니다. 나보다 큰 권력 앞에서 타협하지 않아야 할 때, 정의를 위해 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아야 할 때, 불의를 보면서 분노하고 옳은 길을 용기 있게 선택해야 할 때 유혹 앞에 서게 됩니다. 이럴 때 창설자 신부님이 가르치신 ‘침묵’으로 그 유혹을 이겨냅니다.” 재속복자회 회원들이 따르는 영성인 침묵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모든 근심, 걱정, 두려움, 이기심의 사욕을 주님의 도우심에 의탁해 이겨내는 것, 불의 앞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침묵이다.

오 회장은 “재속복자회 월례모임이 한 달을 사는 ‘일용할 양식’이 되고 있다”며 “많은 평신도들이 재속복자회의 삶을 알게 돼 교회와 세상이 성화되는 길을 함께 걸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성군 국가봉사자는 “끊임없는 정화의 과정을 인내하고 기쁨의 원천으로 받아들인다”며 “이것이 내 삶의 길이고 도전이고 성소”라고 말한다.

■ 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 국가형제회 홍성군(바오로) 국가봉사자

“재속회원으로서 삶은 필연적 정화 과정”

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 국가형제회 홍성군(바오로·66·마산교구 창원 진동본당) 국가봉사자는 “서약한 신분으로 성소를 살게 되면서 나의 삶은 질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던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영성을 따르는 것이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의 성소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름으로써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으로 살아온 26년의 세월 동안 이 믿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재속프란치스코회는 재속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으로 프란치스칸 가족 중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갖는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아있을 당시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 집을 나와 성인을 따르려 한 것이 그 기원이다. 1221년에는 재속프란치스코회 첫 회칙 「생활지침」(Memoriale Propositi)이 나왔다. 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 국가형제회는 뜻을 같이 한 28명이 1937년 12월 25일 고(故) 오기선(요셉) 신부 주례로 서울 백동성당(현 혜화동성당)에서 입회식을 거행한 것이 출발이었다. 한국 국가형제회 국가봉사자는 재속프란치스코회 국제형제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직책이다.

홍성군 국가봉사자가 지난 1월 2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제39차 정기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 국가형제회 제공

홍 국가봉사자는 교회 내 여러 사도직 단체들에서 활동했지만 활동이 늘어갈수록 마음의 평화와 기쁨이 따르지 않고 있음을 느낄 때, 재속프란치스코회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사제나 주변 신자들에게 권유를 받으면 사도직 단체에 들어가 두루 활동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신자로부터 ‘나는 서약(Professio)한 신분으로서 모든 활동을 서약에 바탕해서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서약’이란 말을 처음 듣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신자가 바로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이었습니다.”

홍 국가봉사자는 서약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1995년 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 국가형제회에 지원했다. 1996년에 입회하고 1998년 유기서약을 거쳐 1999년 종신서약을 했다. ‘서약’의 핵심은 일생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가르쳐 준 방법에 따라 우리 주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려 힘쓰는 것이다. “제가 서약한 신분으로서 사는 성소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전적으로 교회에 소속된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홍 국가봉사자에게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와 성 프란치스코라는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은 영원한 도전이며, 기쁨이자 힘겨움이다.

“한 번 서약했다고 해서 사람이 단기간에 바뀐다면 믿을 수 없는 거짓입니다. 신자들 사이에서 어떤 강의나 체험, 단체활동을 통해 사람이 확 바뀌었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지만 이런 말은 조심스럽게 들어야 합니다. 성급하고 위험한 욕구에서 나온 말인 경우가 많습니다.”

홍 국가봉사자는 1998년 유기서약 이후 24년의 성소 생활을 ‘필연적 정화의 과정’으로 표현했다. “하느님의 자녀다운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만 내 안에는 정화해야 할 대상이 뿌리 깊은 바윗돌처럼 남아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과거의 나로 돌아가 실망하는 경우에도 교회가 보잘것없는 존재인 나를 받아들여 줬다는 사실에서 힘을 다시 얻게 됩니다. 끊임없는 정화의 과정을 인내하고 기쁨의 원천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내 삶의 길이고 도전이고 성소입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