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중)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04-20 수정일 2022-04-20 발행일 2022-04-24 제 329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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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순교자’ 주보로 모시고 생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창설자 방유룡 신부가 서울 성북동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대월’ 기도를 바치는 모습.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수녀들은 매일 아침 “완덕(完德)을 위하여 점성, 침묵, 대월로 면형무아를 약속합니다”라는 수도 근본정신을 서약하며 기도를 시작한다. 이 수도 근본정신에는 창설자 고(故) 방유룡 신부(레오, 1900~1986) 영성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다.

방 신부가 수도생활의 최종목표로 삼았던 ‘면형무아’(麵形無我)란 ‘성체’를 뜻하는 말이었던 ‘면형’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기 위해 사욕을 없애고 자신을 온전히 비운 상태를 의미하는 ‘무아’가 연결된 말이다. 이는 마치 누룩 없는 빵이 성체가 되듯, 우리도 자신의 사욕을 없애고 비워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면 ‘면형무아’가 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20)이 되는 것이다.

‘점성정신’(點性精神)은 ‘점’의 성질을 일컫는 ‘점성’과 ‘정신’을 합쳐 만든 방 신부의 고유한 영성 용어다. ‘점’은 위치만 있고 크기가 없는 것이면서도 모든 도형의 기초가 된다. 이렇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점’이 가진 특성 안에서 방 신부는 겸손의 극치를 발견하고, 이 ‘점’이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성체면형’이 되신 그리스도와 닮았다고 말한다.

바로 이 ‘점’처럼 작은 자가 돼, 일상 안의 작고 미소한 일에 충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점성정신’이며, 이것이 수도생활의 기초이며 뿌리가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성체면형’이 되신 주님께로 가는 출발점이요 길이다.

‘점성정신’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기 시작한 영혼은 자기 자신은 물론 하느님 아닌 일체의 것을 버리고 비우며 정화하는 ‘침묵’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극복하는 길, 자기 비움(케노시스)을 뜻한다. 방 신부는 이 ‘침묵’을 ‘육신 내적 침묵’(분심 잡념과 사욕의 침묵), ‘육신 외적 침묵’(이목구비, 수족, 동작의 침묵), ‘영혼의 침묵’(이성과 의지의 침묵)으로 구분해 완덕(完德)을 위한 방법으로 수행하게 한다.

‘침묵’으로 정화된 영혼이 하느님과 인격적인 친교를 맺고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을 ‘대월’(對越)이라 한다. 대월은 수도생활의 중심으로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잡념과 분심을 뛰어넘고, 사욕을 억제해 빛이신 하느님과 대면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수도생활이며 대월생활이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점성’, ‘침묵’, ‘대월’을 넘어간 영혼은 ‘면형무아’라는 목적지에 도달한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또한 순교자들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신앙과 사랑을 위해 생명을 바친 한국 순교자들을 주보로 모시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을 순교정신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