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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15)배티성지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4-13 수정일 2022-04-13 발행일 2022-04-17 제 3290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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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전하기 위한 목자의 열정 오롯이 느껴져

신앙 지키고자 산골에 숨어 지냈지만
박해 위협 피할 수 없었던 배티 교우촌 
최양업 신부가 신학교 지도 맡는 동안
사목 중심지로 두며 저술활동도 펼쳐

배티성지에 세워진 최양업 신부 동상. 뒷편 건물은 2001년 복원된 배티 신학교.

■ 신앙 지키기 위해 헌신한 신자들, 배티에 잠들다

충청북도 진천에서 경기도 안성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많았다고 알려진 돌배나무. 진천과 안성 접경에 위치한 배티는 배나무가 많은 고개라는 뜻에서 가져왔다. 배나무고개의 한자어인 ‘이치’(梨峙)로 쓰이다 훗날 그 훈독인 배티로 굳어졌다. 조선후기까지 충청도 진천현 백곡면에 속해 있던 이곳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던 오지인 데다, 충청좌도와 우도, 경기도 접경에 위치하고 있어 박해를 피해 떠돌던 신자들이 숨어 살기에 적당했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고향을 떠나온 신자들이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움막을 짓고 화전을 일구고 숯가마를 운영하며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갔던 신자들.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온 신자들을 만나기 위해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1837년 배티 교우촌을 찾았고, 그해 5월 공소로 설정했다.

1866년 병인박해 이전까지 배티 인근에는 많은 교우촌이 생겨났다. 삼박골, 은골, 정삼이골, 용진골, 절골, 지구머리, 동골, 지장골, 발래기, 방축골 등 알려진 것만 15곳에 이른다. 당시 교회 밀사로 활동하던 김 프란치스코, 수원 느지지(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가 고향인 복자 장 토마스, 충주 출신 복자 송 베네딕토 가족 등이 배티로 이주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깊은 산골에 정착했지만 박해의 위협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박해기에 배티 일대에서 체포된 순교자 수는 34명에 이른다. 순교자 중 지장골 출신 오반지(바오로), 배티 출신 장 토마스, 절골 출신 박경진(프란치스코) 등 8명과 최양업의 어머니 이성례(마리아)는 2014년 8월 16일 시복됐다.

병인박해로 인해 신자들이 죽거나 떠났던 배티 교우촌은 1888년 재건돼 다시 공소로 설정됐다. 5년 뒤인 1893년 교리학교가 설립됐으며 이웃 용진골(현 백곡면 용덕리)에서는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에 포함된 하느님의 종 윤의병(바오로) 신부가 성소의 꿈을 키웠다. 또한 이 당시부터 신자인 묘지기들이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을 돌보면서 신앙 선조들의 참 신앙을 이어받는 데 노력해 왔다. 배티 인근에는 28기의 순교자 묘소가 남아 있다.

최양업 신부의 삶과 신앙을 체험할 수 있는 ‘최양업 신부 박물관’.

■ 최양업의 신앙과 열정 느낄 수 있는 배티성지

최양업은 1853년 여름, 조선대목구 배티 신학교의 지도를 맡은 이후 약 3년 동안 배티 교우촌을 사목 중심지로 삼았다. 또한 신학교가 있었던 이곳에서 조선인 사제 양성에 대한 희망을 키워나갔다.

페레올 주교가 ‘(조선 대목구에는) 허술한 작은 신학교가 있습니다’라고 밝힌 1850년 11월 5일자 서한을 통해 그 이전인 9월경 신학교의 동계용 건물이 배티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최양업도 이곳에서 신학생을 지도했고 이 바울리노, 임 빈첸시오, 김 요한 사도 등 세 명을 페낭으로 유학 보냈다.

사목순방이 끝나는 9~10월에는 배티 사제관에 거처하면서 저술에 몰두했다. 신자들에게 교리와 신앙의 교훈을 쉽게 전달하고자 「천주가사」를 짓고, 최초의 한글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와 한글 교리서인 「성교요리문답」도 이곳에서 번역했다.

배티 교우촌의 성역화 사업은 1976년 무렵 시작됐다. 1981년 배티성지 제1회 순교자 현양대회를 시작으로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 성당 봉헌(1997), 양업교회사연구소 창립(1999), 최초의 조선대목구 신학교 겸 성당·사제관 봉헌(2001),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관(대성당) 봉헌(2012) 등 최양업 신부의 신앙과 사목자로서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개발됐다. 또한 배티성지는 2011년 충청북도 문화재(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됐다.

2014년 4월 개관한 최양업 신부 박물관은 최양업을 ‘보고 느끼고 기도할 수 있는’ 장소로 순례자들에게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교회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1전시실, 유물을 통해 최양업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2전시실을 비롯, 최양업의 사목여정을 디오라마와 영상으로 생생하게 재현한 3전시실은 최양업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최양업의 삶과 신앙을 느끼고 기도할 수 있는 배티성지에서는 복자 9명의 시성과 최양업의 시복을 위한 기도와 현양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