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분단의 상징 철조망이 평화 염원하는 십자가로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04-05 수정일 2022-04-05 발행일 2022-04-10 제 3289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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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 박용만 이사장 신앙 프로젝트
‘철조망, 평화가 되다’ 전시
4월 13~26일 갤러리1898

평화를 위한 염원이 담긴 철조망 십자가. 폐철조망을 6겹으로 꼬아 불에 녹이고 망치로 두드려 만들었다. 벨스트리트파트너스 한상준 차장 제공

대립과 갈등의 상징인 철조망이 평화를 염원하는 십자가로 재탄생했다.

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 박용만(실바노) 이사장의 신앙 프로젝트 일환으로 만들어진 철조망 십자가가 ‘철조망, 평화가 되다’를 주제로 4월 13~26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 제3전시실에서 전시된다.

철조망 십자가는 사회 한켠에 드리워진 그늘을 바라보면서 이를 외면하지 말고 함께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진행한 ‘구르마 십자가’, ‘수녀복 치유배개’에 이은 박 이사장의 세 번째 신앙 프로젝트 작품이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만찬에 경제인으로 유일하게 참석한 박 이사장은 긴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현실의 벽을 느낀 박 이사장은 “현실의 장벽은 무너뜨릴 수 없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갈등과 대립으로 세워진 철조망은 스스로 거둘 수 있으리라 염원하며 철조망 십자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평화를 위한 염원이 담긴 철조망 십자가. 폐철조망을 6겹으로 꼬아 불에 녹이고 망치로 두드려 만들었다. 벨스트리트파트너스 한상준 차장 제공

지난해 초 서울대 미술대학 권대훈 교수를 섭외하며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권 교수가 가르치는 대학생들도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마침 국방부는 고성 동해안부터 김포 한강변까지 이어져 있는 군 경계철책 중 일부 구간의 철조망을 철거해 국민들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돌려주고 막혔던 길을 평화의 길로 개방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권 교수와 학생들은 거기서 폐기되는 철조망을 수거해 136개의 철조망 십자가를 만들었다. 136개의 의미는 남과 북이 대립과 갈등의 장벽 너머에서 살아온 68년의 세월을 합친 숫자로, 하나되자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작은 철편들이 수없이 박혀 위험한 철조망을 6겹으로 꼬아 불에 녹이고 망치로 두드리는 작업을 거쳤다. 이어 평화를 의미하는 피스 마크를 새긴 나무 좌대 위에 철조망 십자가를 세웠다. 여기에는 남북이 대립과 갈등을 넘어 평화로 나아가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렇게 완성된 십자가는 지난해 10월 G20 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탈리아 로마에서 먼저 공개되며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세계에 알렸다. 전시는 로마 성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당에서 열렸고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철조망 십자가가 전시됐던 장소인 ‘성모 마리아를 위한 경당’은 전시 후 ‘한반도 화해와 평화의 경당’으로 이름이 변경되기까지 했다.

전시회를 앞둔 박 이사장은 “대립과 갈등의 휴전선 철조망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평화의 십자가로 세워져 우리 안의 날선 것들을 녹이고 평화를 가져다주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