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창간 95주년 특집 대담] 교회 언론의 사명과 역할

우세민 기자
입력일 2022-03-22 수정일 2022-03-23 발행일 2022-03-27 제 328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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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장 더 많이 만들어져야”
“직접 체험한 복음의 기쁨 생생하게 전하는 언론 되길”

가톨릭신문이 창간 95주년을 맞았다. 일제강점기이던 1927년 4월 1일, 실의에 빠진 민족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가톨릭신문은 제국주의의 억압을 뚫고 탄생했다. 지난 95년 동안 전쟁과 권력 탄압 등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가톨릭신문은 오직 민족 복음화라는 사명으로 흔들림 없이 외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가톨릭신문이 처한 환경은 예전과 다르다. 종이신문을 향한 관심은 점차 줄어들고, 교회 가르침마저 자기 식대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 이로 인한 가짜·왜곡뉴스 확산도 심각하다.

가톨릭신문은 창간 95주년을 기념해 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위원장 옥현진(시몬) 주교와 만나 ‘교회 언론의 사명과 역할’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한국 사회의 대변혁기를 맞는 시점에서, 가톨릭교회 언론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 모색하기 위해 의견을 들었다.

-대담: 사장 김문상(디오니시오) 신부

-일시: 2022년 3월 16일 오후 3시

-장소: 광주대교구청 총대리 집무실

옥현진 주교(왼쪽)와 김문상 신부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옥 주교는 “신자들이 내적 변화를 느낄 때 비로소 하느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며 “언론은 이 같은 신앙 체험과 변화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 우세민 기자

■ 95돌 가톨릭신문

-김문상 신부(이하 김 신부): 가톨릭신문은 1927년 4월 1일 창간해 올해로 95주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2027년이면 창간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먼저 가톨릭신문과 독자들에게 축하와 격려 말씀 부탁드립니다.

▲옥현진 주교(이하 옥 주교): 교회 신문으로서 세상 언론이 주지 못하는 다양한 정보와, 또 신앙인이 갖춰야 할 소양을 알려주셔서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다른 어떤 교리서나 전문적인 신학서적 등이 줄 수 없는 다양한 저자들의 생각과 정리된 이야기들을 신문 지면을 통해서 알 수 있으니, 어떤 신문보다도 교회 신문이 공헌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직자, 수도자들처럼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교회 소식을 필히 접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평신도들의 기고도 중요합니다. 그 행간에 있는 뜻을 종교 지도자들은 읽어내야 하겠지요. 직접적으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잡아내고, 백성들의 소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경청하면서 교회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 사회 갈등과 교회 언론

-김 신부: 지난 3월 9일 선거를 통해 새 대통령 당선자가 탄생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화합하고 한 단계 성장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세대 간 소통 부족, 계층 간 이해관계, 편가르기 등으로 인해 심각한 갈등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언론들이 이런 갈등을 조장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이처럼 언론이 갈등을 조장하는 현상들이 심화 되는 이유에 대해 주교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옥 주교: 자본의 논리가 우선이어서 그렇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또한 인간의 심성 안에는 소수의 집단에 속하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는 약한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는 어떤 이기적인 마음들, 자본을 따르는 마음과 내 이익을 따르는 마음들, 그 마음이 우선이 되면 참된 것을 잘 못 보게 됩니다. 눈이 가려져서 세상 사람들이 전달해 주는 지식이나 정보에 대해서 자기 안의 식별력이 없어지는 것과 같지요. 특히 우리는 경쟁 위주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경쟁 관계 안에서는 이해나 사랑보다는 모든 것이 일단 이기고 보자는 자본의 논리대로 움직이지요.

이런 시대에서 언론의 역할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언론 역시 기득권에 속하고 싶은 심리, 도태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진실에 직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톨릭 언론이 참된 소리를 내야 합니다. 가톨릭 언론에게는 자본의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께서 복음을 통해 알려주신 가르침을 용기 있게 전달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김 신부: 우리 교회 안에서도 사회를, 또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참 분열돼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러한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데 교회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교회 언론이 수행해야 할 역할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옥 주교: 가톨릭교회가 오랜 전통 안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리에는 교회의 전통성이나 역사성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레오 13세 교황께서 발표하신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는 신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며 갖춰야 할 소양을 담은 책입니다. 이것이 가톨릭 사회교리인데요. 한국교회는 사회교리를 직접적으로 많이 가르쳐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신자들은 교회가 영적인 이야기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사회, 문화, 정치, 환경, 생태 이 모든 것을 포함해서 사회교리가 가르치는 교리가 있는데, 그걸 우리가 제대로 못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책임이죠.

앞으로는 더 많이 소통해야 합니다. 교회 가르침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토론의 장을 교회 언론이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왜 가톨릭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사회교리를 통해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지 설득하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정답을 정해놓고 하는 토론이 아니라, 생각과 생각이 만나야 하겠지요. 정말 좋은 토론은 누가 누구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에요. 교회의 이야기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틀렸다”고 못 박아버리면 더 이상 대화의 여지는 없어집니다. 열어두어야 합니다. 교회는 계속 대화하려고 열어두고, 인간적으로 더 가까워지면서 공통점을 찾아내야 하죠. 적어도 하느님 백성으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으면서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는 공통점 안에서 접점을 만들어 나가고 설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김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교회가 세상 복음화를 위해서는 더 이상 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야전병원 역할을 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교회 언론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언론은 교회 담벼락을 넘어 대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분이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를 넘어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줄 수 있을까요.

▲옥 주교: 지금까지 가톨릭교회가 한국 사회 안에서 보여진 점은 그래도 긍정적이었다고 제 나름대로 평가를 해보는데요. 그러면 부정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보수적’이라는 이미지, 그리고 사회 변동에 비해 ‘느리게’ 가는, 변화가 잘 안 되는 이미지가 있겠습니다.

가톨릭교회가 고수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왜 생명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가에 대해서 말이지요.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회칙 「인간 생명」(Humane Vitae, 1968)이 나왔을 때도 왜 부부간의 침실 문제까지 교회가 간섭해야 하느냐는 비난으로 이어진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교회가 가져왔던 근본적인 생각은 ‘생명 존중’이었어요. 저는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역사성과 전통성이라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지켜온 우리의 힘들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보수적인 모습으로 보이지 않도록 교회가 혁신을 해야 하겠죠. 개혁을 위해 더 많이 토론하고, 왜 우리가 그런 선택을 해왔는지 더 많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서 항상 대화의 여지를 열어놓아야 합니다. 안 된다고 못 박아놓고 대화를 하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옥현진 주교는 “가톨릭 언론에 대해 자본의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께서 복음을 통해 알려주신 가르침을 용기 있게 전달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 우세민 기자

■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교회 언론

-김 신부: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몸살을 앓는 가운데, 4차 산업혁명과 인구 감소 등 여러 부문에서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황님의 우려대로, 소외된 사람들이 더욱더 피해를 받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사회적 약자들의 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듯 보입니다. 교회 언론이 본연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교회 언론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교회’를 구현하기 위해 교회 언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옥 주교: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이웃들의 마음이 세상에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교회 언론인들이 특히 노력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가난한 이들, 아픈 이들을 정말 공감하는 마음이 우선인 것 같아요. 그 공감하는 마음이 동화됐을 때 잘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의 입장에서 그저 객관적으로만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기사로라도 꼭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좋은 글로써 그 감정들이 또 그러한 분위기들이 잘 전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공감 능력이 기자로서는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옥현진 주교는 가톨릭 언론인들에게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고, 이게 보람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체험의 순간들이 꼭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 변화의 시기, 교회 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

-김 신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는 대변혁의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던 기존의 기준과는 다른, 이른바 ‘뉴노멀’이 필요한 시기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모습의 교회 언론을 구현하기 위해 가톨릭신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주교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옥 주교: 언제부터인가 제가 느끼기에, 많은 언론들의 기사가 거의 똑같아요. 과거에는 어떤 신문의 특정 기자나 논평자의 글을 찾아보던 시대가 있었어요. 그들의 글이 가진 수려함과 전달력 안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논설을 잘 읽어보며 공부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물론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필독서였겠지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글을 통해서 감동을 받기 참 어렵습니다. 특정 기자의 글을 골라서 읽고, 마음이 움직여지고, 행동하게 되는 그런 글들을 찾기 힘들어요. 어쩌면 작은 지면 안에 적힌 작은 글씨를 유심히 바라보는 그런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영상으로 빨리빨리 지나가는, 눈으로 이미지를 읽는 시대가 됐거든요. 깊이 있게 빠져드는 글이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가톨릭신문을 비롯한 언론계에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발로 뛰는 취재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좀 더 담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현장의 좋은 목소리를 담아서 좋은 글로 다듬어서 읽었을 때 감동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설득이 빨리 되는 글이 좋은 글인 것 같아요. 읽었을 때 금방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고요. 취재 기자의 발 빠른 움직임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담아냈으면 합니다. 단순 사건 사고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교회적인 시선과 감각을 담아서, 읽는 사람이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더 집중해야 되지 않을까요.

-김 신부: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교회 언론이 반드시 지켜야 할 사명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교회 언론이 절대 준수해야 할 가치, 잃어버려선 안 될 사명이 주교님께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옥 주교: 물론 복음 전파죠.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신앙인이라면 내가 체험한 예수님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의 신앙을 알릴 수 없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내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매 순간이 행복하고 기쁠 수는 없겠지만, 시련을 이겨내면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해의 지평이 더 넓어지지요.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고 받아들였는지 하는 것들을 나눌 수 있다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런 나눔을 통해 하느님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주보에서 신앙을 체험한 신자들의 체험담을 읽어보게 되면, 참 따뜻하더라고요. ‘이런 경험에서도 이렇게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구나’ 하면서 용서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신자들이 내적 변화를 느낄 때 비로소 하느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고,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언론은 이 같은 신앙 체험과 변화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돼야 합니다. 세상과 담을 쌓은 이야기는 우리끼리 이야기로 머물 수가 있는데, 세상 안에 살면서 느껴지는 체험들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 신부: 교회 언론의 변화와 쇄신의 근원은 ‘교회 언론 종사자들의 의식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어렵다면 교회의 지도와 사목적 지원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교회 언론 종사자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또는 교회가 그들을 위해 해야 할 노력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옥 주교: 각자가 하느님 체험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신앙 체험 혹은 하느님 체험이 있으면 사명감이 생기거든요. “내가 하는 일이 보람 있는 일이구나. 이 일이 나에게 의미를 주는 기쁜 일이구나.” 이런 체험들을 할 수 있다면 기본적으로는 그게 신앙 체험이자, 하느님 체험이 아닐까요. 가톨릭신문사의 이념과 가치가 가톨릭신문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아 들어간다면, 직원들이 훨씬 더 힘을 내서 일할 수 있겠지요.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고, 이게 보람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체험의 순간들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직장에서 렉시오 디비나를 하는 등 실생활에서 나누는 신심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지치지 않고 일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김 신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주교님의 가르침대로 가톨릭신문이 한국교회 구성원들의 성화와 세상 복음화를 위해 창간이념대로 흔들림 없이 걸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