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와인으로 유혹해 포교한 서양 선교사?' 사실일까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02-08 수정일 2022-02-09 발행일 2022-02-13 제 3281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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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가 포교에 도움됐다는 근거 찾을 수 없어
포도주만 강조해 오해 일으켜
17세기 조선인들 눈에 비친
‘신기한 서양 문물’의 하나
선교사들이 대접한 포도주
손님 대우·친교의 의미 지녀

포도주는 당시 조선인에게 신기한 서양 문물의 하나일 뿐, 포교 활동에 도움이 됐다는 근거 자료는 찾을 수 없다.

“서양 선교사들, 동아시아인 와인으로 유혹해 포교 활동.”

한 중앙일간지 1월 22일자 일요판 칼럼 제목과 내용을 보고 교회사 연구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칼럼 필자인 손관승 전 iMBC 대표이사는 이승훈(베드로)이 1784년 중국 북경에서 한국인으로 첫 세례를 받기 전인 17세기 전후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했던 소현세자 일행과 조선 연행사(燕行使) 등을 언급하며 중국에서 활동하던 서양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에 와인(포도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17세기 일본에서 발간된 「다이코기」(太閤記)를 인용해 “서양 선교사들은 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포도주, 술을 못 마시는 이들에게는 카스테라와 카라멜을 주면서 유혹했다”고 서술했다. 이 주장은 사실일까?

교회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이 칼럼이 가톨릭에 대해 부정적 시각에서 작성됐거나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천주교사연구회 신의식(멜키올) 회장은 “조선에 포도주가 전해지기 전인 17세기 무렵에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을 찾은 조선인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한 것은 손님을 정성을 다해 대우하고 좋은 선물을 제공한다는 뜻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포도주는 미사 전례를 설명할 수 있는 귀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술이기 때문에 서양 선교사들이 포도주를 통해 미사 전례를 설명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자 이현주(마리아 막달레나·아시아천주교사연구회 회원)씨도 “조선인이 중국에서 처음 접한 포도주는 ‘서양 문물의 하나’로서 친교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해당 칼럼은 전체적인 역사 사실을 모르고 포도주만을 부각시켜 오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사 아카데미 장정란(베로니카) 교수 역시 “교회사 어느 기록에서도 중국에서 포도주가 포교 활동에 도움이 됐다는 근거 자료를 찾을 수 없고, 조선인에게 포도주는 ‘신기한 서양 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연행사와 동행하는 자제군관 자격으로 중국에 다녀온 이기지(李器之, 1690~1722)가 1720년 7월 27일 한양을 출발해 1721년 1월 7일 귀국할 때까지 견문을 기록한 「일암연기」(一庵燕記)에는 포도주와 관련한 문장들이 나온다. “색은 검붉고 맛은 매우 향긋하고 상쾌했다. 나는 본디 술을 마실 줄 모르는데 한 잔을 다 마시고도 취하지 않았다.”, “서양 포도로 술을 빚으면 수십 년이 지나도 부패하지 않는다.” 등인데 포교활동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다.

장정란 교수는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동양 지식인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던 것은 한문서학서였다”면서 “지적 호기심이 강한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 방문 기회에 한문서학서를 얻고 싶어했고, 서양 선교사들은 한문서학서는 물론 「천주실의」,「칠극」등 그리스도교 서적을 함께 넣어줬다”고 부연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