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제주시 해병대 제9여단 탐라대본당 김종헌(바오로) 신부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01-11 수정일 2022-01-11 발행일 2022-01-16 제 327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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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씨앗 뿌리는 그 마음으로 군사목 임했죠”
첫 부임지 장병 신자 1명 불과
‘찾아가는 사목활동’ 펼치고
사비 털어 성탄 나눔 행사
“어려운 여건 기꺼이 극복할 것”

제주시 해병대 제9여단 탐라대본당 김종헌 신부(맨 왼쪽)가 지난해 12월 23일 ‘성탄 맞이 전 장병 핫도그 나눔 행사’를 마치고 장병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종헌 신부 제공

■ “군종사제는 선교사입니다.”

김 신부는 수원교구에서 2017년 12월 사제품을 받고 지난해 7월 군종장교로 임관했다. 첫 부임지인 제주도 탐라대본당에 왔을 때 제일 큰 어려움은 신자가 거의 없는 본당 환경으로 인해 김 신부 자신이 ‘양떼 없는 목자’처럼 여겨졌다는 점이다.

“양떼 없는 목자는 목자일 수 없듯 사제는 신자로 말미암아 성화되는데 성화되기 어려운 여러 여건이 제게는 너무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이때 떠오른 군종교구장 서상범(티토) 주교의 말 한마디가 김 신부에게는 큰 위로가 됐다.

“지난 11월 서 주교님께서 제주도에 오셔서 제가 겪는 고충을 아시기라도 한 듯 ‘군종사제는 기본적으로 선교사야. 선교사의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먼저 군종신부의 길을 걸었던 ‘큰형님’ 같은 분의 이 한마디는 제가 군종사제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사목의 이정표가 됐습니다.”

지난해 6월 군종장교 임관 전 충북 영동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훈련받고 있을 때 김 신부 동기 군종사제단을 위문 방문한 서 주교는 “나랑 너희랑 동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서 주교가 신학생 때 병사로, 군종신부로, 군종교구 총대리로 군종교구와 인연을 맺은 후 지난해에는 교구장으로 네 번째 군에 들어왔기 때문에 지난해 임관한 군종신부들과 ‘동기’로 지칭한 것이었다.

특히 김 신부는 본당 사제가 신자들로 인해 성화된다면 선교 사제는 비신자들로 말미암아 성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교구 후배 신부가 군종교구에 오게 되면 저 역시 ‘군종사제는 선교사’라는 말을 제일 먼저 해 주고 싶습니다.”

■ “더 바빠졌습니다.”

김 신부가 탐라대본당에 처음 부임했을 때 장병 신자는 딱 1명이었다. 이후 차츰차츰 한 명씩 늘기 시작해 지금은 ‘4명이나’ 된다. 군본당에서 신자 1명 늘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본당 안에서의 활동에는 여러 제약이 따르고 있지만 오히려 본당 밖 활동이 더 활발해졌고 김 신부도 더 바빠졌다. 그 결과가 서서히 결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장병들을 찾아가 위문하고 미사를 원하는 신자가 있으면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 단 1명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가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더욱 찾아가는 서비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외출과 휴가가 제한되고 있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장병들과 상담하는 일도 김 신부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다. 상담이라고 하지만 하소연을 들어주기만 해도 장병들은 고마워한다. 군 당국에서 장병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군종장교들에게 요청하는 ‘회복탄력성 교육’과 ‘인성 교육’의 중요성도 점차 커지면서 교육 준비와 강의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투입되고 있다. 최근엔 장병들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사목에 나서기 위해 ‘글로벌 MBTI 전문가 과정’도 이수했다.

“요즘 장병들이 글로벌 MBTI 과정에 흥미를 느끼고 있어 장병들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교육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군대에 와서 공부를 또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김 신부는 ‘더욱 찾아가는 서비스’ 일환으로 지난 주님 성탄 대축일에는 ‘푸드 트럭’을 활용해 여단 본부 장병 450명에게 핫도그와 음료를 제공했다. “이번 성탄에는 여자 친구도, 부모님도 못 만나 추울 것 같다”는 한 장병의 말이 기도 중에 떠올라 같은 부대 군종법사, 군종목사와 사비를 모아 제주도에 있는 푸드 트럭을 섭외해 진행한 이벤트였다. 여건상 간식 선물을 못 받은 예하부대 장병들에게는 김 신부가 군종법사, 군종목사와 함께 직접 햄버거를 들고 다니며 격려를 이어가는 중이다.

■ “가시덤불에도 씨를 뿌립니다.”

김 신부는 탐라대본당에서 군종사제로 살며 마르코복음 4장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묵상하곤 한다. 정상적인 농부라면 당연히 좋은 토양에 씨를 뿌릴 텐데 왜 돌밭이나 가시덤불에도 씨를 뿌렸는지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

“군종신부에게 무관심한 장병들을 볼 때면 군사목도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의미 없는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느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제인 저를 보고 변화하는 장병들을 만나면서 농부가 왜 돌밭에도, 가시덤불에도 씨를 뿌렸는지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김종헌 신부는 군종사제들이 광야에서 메마르지 않도록 그리고 많은 씨앗을 뿌림으로써 더욱 성화될 수 있도록 신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아울러 “군종후원회를 통해 군사목이 보다 더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한 손 거들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