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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2)귀국을 위한 고된 여정 가운데 사제가 된 최양업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1-04 수정일 2022-01-04 발행일 2022-01-09 제 327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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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련한 신자들 위해 희생하기로 다짐하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에 대한 애통함과
고국으로 갈 수 없는 답답함 토로
하느님께 바라는 희망으로 의지 다져
메스트르 신부와 조선으로 가던 중
전라도 고군산도 부근 이르러 난파
상해로 돌아가 순명 새기며 사제수품

1847년 당시 최양업 부제는 메스트르 신부와 함께 프랑스 군함을 타고 조선으로 들어오던 중 좌초되어 군산 고군산도 부근(현재 신시도)에서 피신해 한참을 머물렀다. 사진은 최양업 신부 일행 난파 체류지 안내판. 양업교회사연구소 제공

1844년 12월 최양업은 김대건과 함께 소팔가자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았다. 1845년 8월 최양업보다 먼저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은 조선 입국을 위해 떠났다. 이후 여러 차례 귀국로를 탐색했지만 1846년 병오박해 소식과 함께 조선 교회 밀사들의 만류로 귀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최양업.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가 이전해있던 홍콩으로 돌아간 최양업은 1847년 4월 20일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네 번째 서한을 부친다.

애통한 가운데 한줄기 희망이었던 하느님

‘가장 친애하는 동료’였던 김대건 신부의 순교 소식은 최양업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애통함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조국의 가련한 처지를 듣고도 포교지 밖을 떠돌아야 하는 답답함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타국에서 겪는 힘든 역경과 극도의 빈곤. 한줄기 빛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최양업은 “저의 빈곤과 허약을 의식할 때 매우 두렵고 겁이 납니다만 하느님께 바라는 희망으로 굳세어져 방황하지 않으렵니다”라고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다시 하느님을 바라봤다. “우리의 모든 희망은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있고,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뤄지는 것뿐입니다. 그 밖의(소원이 있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죽고 묻히는 것입니다.”

페레올 주교가 보낸 「순교자들의 행적」도 힘든 가운데 있던 최양업에게 큰 위로가 됐다.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챙겨봤을 최양업은 프랑스어로 된 이 책을 라틴어로 번역해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전하며 로마교회로 보내달라는 말을 남겼다. 최양업은 “문장도 서투르고 문법에 거슬리는 곳이 많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긴 글을 번역할 정도로 라틴어와 프랑스어에 능숙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최양업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이 자료를 보내면서 “드높은 로마교회로 보내주시어, 저와 저의 가련한 조국을 위해 로마에 많은 인사와 순종과 기도를 전해주십시오”라고 전했다.

네 번째 서한을 보내고 5개월 뒤, 상해에서 보낸 최양업의 다섯 번째 편지는 귀국 여정 실패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있다.

메스트르 신부와 함께 조선으로 향하는 군함을 탔지만 전라도 연안 고군산도 부근에 이르러 강풍을 만나 난파했다. 피신한 섬에서 한 달 이상 천막을 치고 살았던 최양업은 그곳에서 조선인들을 보고 그들의 말을 들으며 크게 위로를 받았다고 전한다. 하지만 다시 상해로 돌아가야 했던 최양업은 “저는 서원까지 하면서 간절히 소망해 마지않았고 또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손안에까지 들어온 우리 포교지를 어이없게 다시 버리고 부득이 상해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됐기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라고 전한다.

1849년 5월 12일 상해에서 보낸 서한. 1849년 4월 15일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은 최양업은 한 달 뒤인 5월,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서한을 보내며 사제로서의 거룩한 순명을 새기고 조선의 신자들을 위해 희생할 것을 결심한다.

사제가 된 최양업, 거룩한 순명을 새기다

연이은 귀국 여정의 실패 후 1849년 4월 15일 상해에서 강남대목구장 마레스카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은 최양업.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지겠다는 다짐과 함께 가련한 조선의 신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결심했다.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 저의 주님이시여. 만일 제가 당신 분노의 원인이라면, 저를 바다 속 깊이 던져주시고 당신 종들의 참상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당신 안에서라야 겨우 당신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체하는 것뿐입니다. 오로지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이 제 안에서 저를 통하여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의 굳세진 믿음은 편지에서도 드러났다.

“제 미천함과 연약함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크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저에게 주어진 본분은 하느님 앞에서 모든 신부님들과 저의 동료들을 더 자주 더 열렬히 기억하는 것입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