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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2022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무엇을 강조했나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1-12-28 수정일 2021-12-28 발행일 2022-01-02 제 3276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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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나누고 웃으며 일하는 세상, 평화는 그곳에 있습니다
감염병 유행과 환경 파괴로 인류에게 닥친 위기 극복하려면
개인주의 입각한 경제 모델에서 벗어나 나눔의 연대 만들어야
세대 간 맹목적인 갈등 떨쳐내고 진정한 대화로 협력하면
교육을 통해 노동 창출하고 평화로 나아가는 연결고리 될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1월 2일 로마 프랑스군인묘지를 찾아 한 전몰장병의 묘지에 헌화하고 있다. 교황은 이날 묘지에서 “군인들의 묘지는 분명 전쟁으로 인한 비극”이라면서 “무고한 이들을 죽게 만드는 전쟁을 그만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CNS 자료사진

평화는 ‘높은 데에서 내려오는 선물’이면서 평화를 건설하려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노력의 결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1월 1일) 담화를 발표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노력들을 제시했다. 교황은 ‘세대 간 대화, 교육, 노동: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한 도구’를 제목으로 발표한 담화에서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이기적인 무관심을 극복하는 세대 간 대화, 평화의 추진력인 교육,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노동의 가치를 강조했다.

올해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 담긴 평화 건설의 도구들을 살펴본다.

■ 인류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평화의 길

교황은 담화 첫 머리에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평화를 선포하는 이의 저 발!”(이사 52,7)을 인용하면서 이 성경 구절은 폭력과 억압에 지친 이들, 치욕과 죽음에 노출된 이들의 안도의 한숨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통합적 발전’(회칙 「민족들의 발전」 76항 이하 참조)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평화의 길은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의 실제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국가들 간에 건설적 대화를 이루고자 하는 수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귀청이 터질 듯한 전쟁의 굉음들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일으키는 질병들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의 영향은 날로 심각해지고 기아와 물 부족으로 빚어지는 비극들이 늘어난다”고 밝혔다.

교황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더불어 감염병 유행과 기후 변화, 환경 파괴를 언급한 것은 인류에게 닥친 위기의 와중에 확산되는 ‘개인주의’의 해악이 전쟁만큼 심각하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교황은 “나눔의 연대가 아니라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 모델들이 계속해서 득세하고 있다”면서 “오래전 예언자 시대에서처럼 지금 우리 시대에서도 정의와 평화를 탄원하는 가난한 이의 부르짖음과 지구의 부르짖음(회칙 「찬미받으소서」 49항 참조)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황이 평화로부터 멀어져 있는 오늘의 현실을 언급한 것은 평화 건설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교황은 “모든 시대에 평화는 높은 데서 내려오는 선물이며 함께하는 노력의 결실”이라면서 “모든 이는 더욱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화는 하느님에게서 오지만 사람의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교황은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해 우리에게 요청되는 세 가지 길을 제안했다.

■ 평화 건설을 위한 세대 간 대화

교황은 막대한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여전히 지속되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피해 그들만의 작은 세상 속으로 숨어버리려 하거나 파괴적인 폭력으로 현실에 맞서 싸우고자 하지만 이 둘 사이에서 언제나 가능한 선택지는 ‘대화’라고 제시했다. 이기적인 무관심과 폭력적인 저항이 아니라 세대 간 대화(회칙 「모든 형제들」 199항)가 항구적인 평화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교황은 “현재 보건 위기 상황은 우리의 고립감을 심화시켰고, 자기중심적 경향이 짙어지면서 노인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처럼 젊은이들도 미래에 대한 공동의 전망이 결여돼 있다고 느낀다”면서도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성행하는 동안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자비, 나눔, 연대를 실천하는 마음 따뜻한 이들을 만났다”고 희망을 전했다.

세대 간 대화가 이 희망의 기초로 표현된다. “대화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서로 다른 관점들을 공유하며 합의를 이루고 함께 걸어가도록 한다”며 “세대 간에 이러한 대화를 촉진하는 데에는 항구하고 함께 나누는 평화의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갈등과 무관심이라는 딱딱하게 굳어 척박해진 땅을 갈아엎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교황은 기술과 경제 발전으로 세대 차이가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는 만큼 세대 간 협력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것을 제안하면서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지혜와 경험이 필요하고, 나이가 더 많은 이들은 젊은이들의 지원, 사랑, 창의력, 활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황은 환경에 대해서도 ‘각 세대가 빌려 쓰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하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세대 간의 대화라는 시각에서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는 일을 생각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 평화의 추진력인 가르침과 교육

교황은 평화의 길을 함께 만들어 가는 시기에 세대 간 대화의 특별한 상황과 맥락으로 교육과 노동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군사비용은 냉전시대 막바지에 들어간 비용을 넘어설 정도로 늘어난 반면 교육과 훈련에 대한 투자는 크게 축소되는 현상을 언급한 뒤 “각 나라 정부가 교육과 무기에 사용되는 공공 기금 비율을 역전시킬 경제 정책들을 개발할 때”라고 요청했다. “국제적 군비 축소의 참된 길을 추구하고 보건, 교육 시설, 기반 시설, 땅에 대한 돌봄 등을 위해 경제적 자원을 더욱 잘 이용할 때에 민족들과 국가들의 발전을 위해 이롭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교황은 “교육에 대한 투자에 돌봄의 문화를 촉진하려는 더 큰 노력이 따르기를 바란다”며 “우리는 젊은 세대의 교육과 훈련에 투자함으로써 그들이 노동 시장에서 자신에게 알맞은 자리를 찾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권고했다. 교육을 통한 노동 창출이 평화로 나아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 평화를 건설하는 노동 창출과 보장

교황은 “노동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받은 은총뿐만 아니라 우리의 헌신,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 다른 이들과의 협동을 드러낸다”는 말로 노동이 평화를 건설하고 지키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교황은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수많은 경제 활동과 생산 활동이 무너졌고 취업 시장에 뛰어든 젊은이들과 실직한 어른들의 앞길은 막막한 상황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침해되고 공동선의 발전이 방해받고 있다”며 “유일한 해답은 품위 있는 고용 기회를 확대하는 것뿐”이라고 호소했다.

이와 더불어 “인간의 노동을 점진적인 기술 발전으로 대체하려는 데에 목표를 두어서는 안 된다”면서 “노동 연령에 있는 모든 이가 노동을 통해 자기 가족의 삶과 사회 전체에 이바지할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황은 마지막으로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에게 호소한다”며 “세대 간 대화, 교육, 노동의 길로 용감하고 창의적으로 우리 함께 걸어가고, 더욱더 많은 사람이 묵묵히 겸손과 용기로 날마다 평화의 장인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