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임명] 삶과 신앙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1-11-02 수정일 2021-11-08 발행일 2021-11-07 제 326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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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콜라레는 성소 일깨우고, 가르멜 영성은 사목 토대 됐다
■ 포콜라레 성소
포콜라레 운동 솔선자 부모께 신앙 유산 물려받고 기도 실천
포콜라레 모임에서 성소 눈떠
■ 가르멜 영성
신학교 입학 후 수도회 입회
수도자 양성에 10여 년 힘쓰고 다른 나라 수도회와 협력 도모
■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한국청년대회 성공적 개최와 사목 지침서 발간 업적 남겨
성지순례 사목 활성화에 기여

정순택 대주교(앞줄 가운데)가 2019년 5월 11일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전국 청년대표자모임에서 참석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된 정순택 대주교는 ‘하느님 한 분으로 족한 사람’, ‘천생 수도자’라는 말을 항상 들어왔다.

정 대주교가 성가정에서 태어나 신앙적 분위기에서 보낸 유년과 청소년 시기, 수도 성소를 발견하고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 후 수도생활에 정진했던 시기, 이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사목했던 시기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정신은 ‘하느님이 나의 첫 자리’라는 사실이다.

서울대교구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정 대주교가 걸어온 삶과 신앙을 짚어 본다.

■ 성가정에서 물려받은 신앙

정 대주교는 1961년 8월 5일 아버지 정운장(요셉·1929~2000)씨와 어머니 조정자(데레사·1937~2000)씨 사이에서 1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정 대주교 가정은 말 그대로 성가정이었다.

아버지는 영남대학교 법대 교수를 지낸 학자이면서 포콜라레 운동 ‘솔선자’(Volunteer)로 활동했다. 어머니 역시 포콜라레 운동 솔선자로서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줬다. 부모로부터 신앙을 첫 번째 유산으로 물려받은 정 대주교는 누나 정혜경(헬레나)씨, 여동생 정유경(체칠리아)씨와 기도가 일상이 되는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방학 중에는 가족 모두가 평일 새벽미사에 함께 참례했고 3남매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을 때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묵주기도를 바치곤 했다. 이와 같은 내리 신앙이 결국 정 대주교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예비해 놓았다.

■ 포콜라레 모임에서 성소 발견

정 대주교는 학창시절 내내 ‘모범생’, ‘수재’라는 말을 늘 듣고 살았다. 항상 최우등 성적을 놓치지 않았고 1980년 서울대 공과대학 공업화학과에 입학했다. 학자였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공학도로서 학자의 삶을 꿈꾸는 듯했지만,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정 대주교를 전혀 다른 길로 이끌기 시작했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중, 주변 권유로 대구에서 열린 포콜라레 마리아폴리에 참석한 것이 정 대주교에게 인생의 분기점이 됐다. ‘마리아의 도시’라는 뜻의 포콜라레 모임인 이 자리에서 그는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고 쓰신다는 진리를 깨달았고 ‘온 세상이 바뀌어 보이는’ 체험을 했다. 성소자로 거듭나는 계기였다.

그러나 아직 학업 중이었던 정 대주교가 성소자의 삶으로 투신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우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하느님의 부르심이 확실한지 기다려 보자고 제안했다. 아버지의 말에 순응한 정 대주교는 1984년 대학 졸업 때까지 자신의 성소를 거듭 살폈고 결국 그해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에 편입해 신학생이 됐다.

■ 가르멜 수도자의 길로

가톨릭대에 편입한 해에 정 대주교에게 또 한 번 인생행로를 바꿔 놓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톨릭대에서 한 한기를 마치고 군 입대를 준비하다 허리를 다쳐 요양하는 동안 가르멜 영성서적을 읽게 되면서 가르멜 영성의 삶에 완전히 빠져든 것이다. 병역의무를 마친 뒤 1986년 5월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했다. 1992년 1월 25일 종신서원을 하고 같은 해 7월 16일 사제품을 받았다.

정 대주교는 1986년부터 가르멜 수도회 수사로 살며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지만, 가장 뚜렷한 면모는 ‘양성자’라고 볼 수 있다. 1993~1996년 가르멜 수도회 수련장, 1996~1999년 서울 학생수도원 원장 등 무려 약 10년간 수도자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더불어 2009~2013년 4년여 동안 가르멜 수도회 로마 총본부 동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담당 최고평의원으로 봉직하며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별 가르멜 수도회의 일치와 협력 도모에 헌신했다.

정 대주교가 양성자로서 수도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놓는 겸손과 온유, 봉사적 리더십에 기인한다는 것이 동료 수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2013년 12월 30일 가르멜 수도원 인천수도원에서 정 대주교가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접한 가르멜 수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주교 될 만한 분이 됐다”면서 “서울대교구는 큰 축복을 받았다”라고 한 말도 같은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정순택 대주교가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과 누나, 여동생 등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대교구 제공

1992년 7월 16일 사제서품식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에게 순명 서약을 하고 있는 정순택 대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2017년 12월 15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진행된 ‘젊은이를 위한 고해성사’ 중 정 대주교가 한 청년의 고해를 듣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18년 주교 사목 현장 체험에서 정 대주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유경촌 주교(오른쪽), 문희종 주교와 함께 봉헌 컵초를 만들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주교로서 청소년사목과 순교자현양 등에 힘써

정 대주교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후 현재까지 서서울지역 및 수도회·청소년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과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 등으로 재임하고 있다.

특히 가르멜 수도회에서 양성자로 오랜 세월 봉사했던 경험을 살려 청소년사목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며, 2018년 제4회 한국청년대회 성공적 개최, 2020년 서울대교구 주일학교 유튜브 채널 개설 등 큰 족적을 남겼다. 올해 5월에는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청소년 사목 지침서」를 발간해 청소년사목에 통일된 지침을 제시하기도 했다.

2016년 6월 이후로는 (재)한국교회사연구소 이사장,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및 시복시성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교회사 사료 체계화, 순교자 현양과 시복시성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2018년 6월 서울대교구 역사관 개관과 2019년 6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개관은 서울대교구 교구사와 한국교회 순교사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정 대주교는 2018년부터 ‘한국-아시아 순례 네트워크’ 사업을 통해 순교자 현양과 성지순례 사목을 활성화시키고, 순교영성 함양과 아시아교회 복음화에 지속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아울러 2018년 9월 ‘천주교 서울 순례길’이 아시아 최초 교황청 승인 국제순례지로 선포된 후 매년 9월 순교자 성월을 기념하는 ‘9월애(愛) 동행’ 행사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정 대주교가 수도자와 주교로 일관되게 하느님을 첫 자리에 놓고 실천해 온 신앙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복음화 요청에 부응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 약력

1961년 8월 5일 대구 출생

1980~1984.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업화학과

1984~1986.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

1986년 5월 가르멜 수도회 입회

1992년 1월 25일 종신서원

1992년 6월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수료

1992년 7월 16일 사제수품

1993~1996. 가르멜 수도회 수련장

2000~2004. 교황청립 성서대학(성서학 석사)

2009~2013. 가르멜 수도회 로마 총본부 동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담당 최고평의원

2013년 12월 30일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임명(타마주카 명의 주교)

2014년 2월 5일 주교 수품

2014년 2월 18일~현재 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및 수도회·청소년담당 교구장 대리

2014년 10월 30일~현재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

2014년 10월 30일~현재 주교회의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

2016년 6월 1일~현재 (재)한국교회사연구소 이사장,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및 시복시성준비위원회 위원장

2020년 1월 1일~현재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신학위원회 위원

2021년 10월 28일 서울대교구장 대주교에 임명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