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가톨리시즘으로 본 ‘오징어 게임’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1-10-26 수정일 2021-10-26 발행일 2021-10-31 제 326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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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어린 경쟁과 지옥같은 불평등…
그럼에도, “희망의 꽃이 피었습니다”
드라마가 비유하는 게임 규칙
자유 선택과 공정으로 포장된 자본주의 경제 체제 모순 풍자
소속감과 연대 바탕으로 하는 ‘보편적 형제애’가 유일한 해법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전 세계를 휩쓴 또 하나의 K-콘텐츠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그 화제성만큼 찬사와 논란을 함께 불러왔다.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한 인기를 얻은 것은 그 신박한 오락성과 함께 오늘날 가장 절실한 보편적 가치, 즉 인간성과 형제애에 대한 공감이 기여했다. 철저하게 오락적이면서도 신랄한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징어 게임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의 개요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과 회칙 「모든 형제들」의 자본주의 비판, 인류의 미래에 대한 해법으로서의 형제애와 닮았다는 것은 놀랍다.

황동혁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극중 성기훈의 대사로 메시지를 요약했다. “나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그래서 궁금해. 너희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돈 때문에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경기장 말처럼 456억 원이라는 결승점으로 몰고, VIP들은 ‘부’(富)를 특권으로 게임을 즐긴다.

456억 원으로 상징되는 부는 모든 것의 척도이고 게임, 나아가 인생의 목표다. 그리고 게임의 참여는 자유로운 선택으로 포장된다. 게임 초반, 과반수가 의결해 게임장을 나온다. 하지만 삶에 지친 이들은 다시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 죽은 이들의 장기를 끄집어내던 의사를 처단하며, 주최측은 그의 죽음의 이유를 게임의 공정성을 훼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선택과 공정으로 포장하지만 게임 속의 사람들에게 애당초 ‘공정’은 없었다. 드라마가 비유하는 게임의 룰은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다르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나이든 노숙자가 길에서 죽는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 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것이 말이나 되나?”며 “오늘날 모든 것이 경쟁의 논리와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있다”고 개탄했다. 교황은 돈의 새로운 우상화도 안 된다, 봉사하지 않고 지배하는 금융 제도도 안 된다, 그리고 폭력을 낳는 불평등도 안 된다고 촉구했다.

드라마는 시종 비인간적 살인 게임과 인간에 대한 일말의 희망 사이 각축을 담고 있다. 인간미는 주로 기훈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는 주어진 상금에 손대지 않음으로써 게임에 승복하지 않고 부르짖는다. “궁금해. 너희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감독은 게임판을 만들어낸 시스템, 경쟁 구도를 만들어낸 사회에 대해 알아야 하고, 울어야 하고, 분노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본주의 비판에서 언성을 높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교황은 무관심의 세계화를 통탄하며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드라마는 마지막까지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이 최후의 해법이라고 믿는다. 애당초 오징어 게임은 불신에 바탕을 둔다. 인간은 생존과 부의 획득을 위해서는 타인까지 부정한다는 믿음을 주최측은 갖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마지막을 희망으로 닫고, 그 일말의 희망을 바탕으로 새로 나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특히 기훈은 부를 내세워 즐기는 ‘이런 짓’을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 비행기 트랩을 뒤돌아나온다. 이는 인간을 말로 여기는, 무한경쟁의 각자도생으로 밀어넣는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다.

교황은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우리가 “소속감과 연대의 공동체를 위한 공동의 열정을 되찾지 못한다면… 많은 이들이 고통과 공허의 손아귀에 넘어갈 것”이라며 “각자도생이라는 개념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빠르게 변질될 것”이라고 일깨운다. 그리고 보편적 형제애가 그 유일한 해법이라고 제시한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