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 말씀이 실행되는 공간
뜨거운 여름 뙤약볕에도 신앙 선조의 뜻을 이어받기 위한 성지순례를 향한 열정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순례를 마치고 나면 얼음이 가득한 시원한 음료가 절로 생각나기 마련이다.
“여기서 쉬었다 가도 되나요?”
지난 7월 16일 연풍순교성지 순례를 마친 한 노부부는 34℃가 넘는 무더위에 쉴 곳을 찾다 순례센터에 들어섰다. 경기도 일산에서 괴산까지, 먼 길 오느라 여유 있게 앉아서 쉬지 못했던 부부는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실 곳을 찾다 성지 가장 안쪽에 있는 순례센터를 발견했다.
“식사도 하시고 차도 마시고 묵상도 하시면서 편하게 있다 가셔도 됩니다.”
순례센터 봉사자는 편하게 머물다 가라며 성지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추천했다.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메뉴판을 읽던 순례자는 가격이 적혀있지 않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봉사자는 순례센터의 특별한 카페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에서는 자기 돈을 내고 커피와 음료를 사 드실 수 없습니다. 전에 오신 순례객들이 봉헌하신 금액으로 얻어 마시는 것이죠. 원하신다면 다른 분들에게 커피와 음료를 거저 주실 수 있지만 원하지 않으시면 봉헌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탈리아에는 ‘카페 소스페소’(Cafe Sospeso)라는 문화가 있다. 이탈리아어로 ‘매달린’이란 뜻인 소스페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통에 가난해서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두 잔 값을 내고 커피를 마시던 것에서 유래했다. 한 사람이 더 낸 커피 값을 유리창에 붙였고 이것을 보고 카페를 찾은 이들은 돈을 내지 않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카페 소스페소 문화를 차용한 순례센터에도 다음 사람을 위해 커피 값을 대신 내준 사람들의 이름이 안내판에 빼곡히 붙어있다. 적게는 1만 원부터 많게는 10만 원까지,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기 위한 순례객들의 따뜻한 나눔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넉넉하진 않지만 순례센터는 봉헌된 금액의 일부를 매달 필요한 시설이나 수도회에 기부하고 있다.
연풍순교성지 담당 권상우 신부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공짜가 단 하나 있는 데,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이라며 “연풍순교성지에 기도하러 오신 분들이 하느님에게 공짜로 받은 것들을 뜻깊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순례센터 운영을 이같이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작은 배려 덕분에 뜻밖의 기쁨을 선물 받은 노부부는 “기분 좋게 이곳에 머물다 간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얻은 것보다 더 큰 금액을 봉헌함에 넣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