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 앞두고 만난 김대건 신부 후손 김용태 신부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1-06-29 수정일 2021-06-29 발행일 2021-07-04 제 3252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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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200주년 맞아 신앙·순교 의미 되새겨야”

성 김대건 신부의 후손인 대전교구 김용태 신부는 “이 시대가 새롭게 발견해야 할 김대건 신부의 면모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에 맞이하는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앞두고 김용태 신부(대전교구 사회복음화국장)를 만났다. 김 신부의 집안은 직계 가족이 없는 성 김대건 신부의 유일한 후손이다. 김 신부의 고조부와 김대건 신부는 고종사촌지간이다. 이 집안에는 순교자만 15위가 있다.

4남4녀 중 사제가 4명, 수녀가 1명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맏형인 김선태 신부는 천안 단국대학교병원 원목신부이고 작은 형인 김현태 신부와 동생 김성환 신부는 대만 신죽(新竹)교구 소속으로 사목 중이다. 작은 누나는 성가소비녀회 김미숙 수녀다.

김 신부는 초등학교 때 가훈을 적으라는 선생님 말씀에 ‘순교 정신’을 적었다고 한다. 부모님과 8남매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저녁 40분씩 기도를 바쳤다. 집이 곧 신학교이자 수도원이었다. 아버지의 훈화는 항상 ‘순교’와 ‘신앙’이었다. 온 가족의 삶의 표양은 성 김대건이었다. 김대건 신부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은 엄청난 책임감이지만, 사제복처럼 자신을 지켜주는 갑옷이다.

김용태 신부에게 이 시대가 새롭게 발견해야 할 김대건 신부의 면모는 ‘길’이었다.

“그분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길’이었습니다. 사면초가에 놓인 조선, 그 암울한 시대에 김대건 신부님은 천주교회뿐만 아니라 조선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분이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지만, 김 신부는 만약 김대건 신부가 젊은 나이에 순교하지 않고 당대의 인재로 조선의 앞날을 개척하는데 기여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새로운 면모를 지닐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전한 새로운 복음적 가치는 조선 땅에 없던 것이었다. 신분과 계급으로 나눠 사람을 억누르고 착취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누구나 형제자매라는 사랑에 바탕을 둔 수평적 관계는 새로운 가치와 전망을 전했다.

김 신부는 “입국을 위해서 수많은 길들을 시도했던 김대건 신부님은 더 나아가 조국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며 “오늘날 코로나19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분은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사제품을 앞두고 김 신부는 ‘나는 순교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들고, 고문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예”라고 답할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순교는 죽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사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오늘날 신앙인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져 정말 중요한 것을 잃은 사람과 같습니다. 온갖 약초를 알지만 정작 산삼은 모르는 심마니처럼요. ‘순교’라는 화두에 ‘죽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정작 물음은 그게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느냐’였고, 저는 ‘예’라고 답할 수 있었습니다.”

고뇌의 끝에 예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체험했던 김 신부는 그제서야 모든 것을 비우고 사랑으로 자신을 채울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순교는 신앙 때문에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이웃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됐다. 순교터는 처참한 죽음의 형장이 아니라 사랑 고백의 현장이다.

김 신부는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에 즈음해, 교회와 신자들은 사랑의 가치, 신앙과 순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현대적으로 되새기고 살아가기를 다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