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청소년 주일 특집] 놀체인 양업 사회적협동조합을 가다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1-05-25 수정일 2021-05-25 발행일 2021-05-30 제 324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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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서 배우는 삶의 주체성… 스스로 행복 일구는 법 배워
놀이 통한 체험 중심 인성 학교
봉사활동·텃밭 가꾸기·등산 등
다양한 경험으로 독립성 키우고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도 길러
소외계층 아이들 위한 수업도 

다놀이반 아이들이 속리산 정상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놀체인 양업 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우리 신나게 놀자.”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하루라도 공부 걱정 없이 신나게 놀았던 경험을 한 적이 얼마나 될까.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논다’라는 의미는 공부를 제쳐두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부정적인 행동으로 간주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놀이가 인성을 키우는 미래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있다.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놀체인 양업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청소년 주일을 맞아 ‘놀이, 체험, 인성’ 세 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공동체의 특별한 교육현장을 소개한다.

■ 믿고 기다리며 스스로 깨닫도록 도와

미성년자인 고등학생이 다니는 학교지만 교내 곳곳은 담배꽁초로 가득했다. 수업종이 울린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교실에는 빈자리가 가득하고 그나마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들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기 일쑤였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이 고등학교의 교장 윤병훈 신부는 매일 기도했다. “아이들이 밖에서 무슨 행동을 하건 살아있게만 해주세요.”

1998년, 국내 최초 대안교육 특성화학교로 문을 연 양업고등학교의 시작은 위태로웠다. 하지만 윤 신부와 교사들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담배를 끊어라’, ‘공부를 해라’는 말 대신 왜 담배를 끊어야 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도록 알려줬다. 그 비법은 양업고의 특별한 수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양업고는 정규 교과 수업 외에 특별교과목을 배정했다. 봉사활동, 현장체험, 산악 등반, 노작(공작과 원예 등 신체 작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교육), 청소년성장 프로그램 등 주당 13시간은 전교생이 함께하는 특별교과 수업을 했다.

오르기 귀찮다며 산 초입에서 버티는 아이들을 이끌고 정상을 올랐고, 인도 사랑의 선교 수녀회에서 봉사하며 타인을 위해 내 것을 내어주며 헌신하는 삶을 경험하게 도왔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은 한 사람도 없었지만, 누군가는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고, 누군가는 상대를 배려함으로써 나를 사랑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윤 신부와 교사들이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을 기다린 지 10년. 어둠이 걷힐 것 같지 않았던 공간에 점차 빛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양업고등학교 초대교장을 지낸 윤 신부는 “아이들과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소위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대부분 어른들에게 있고, 어른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하는 방식이 저항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았다”며 “어른들이 비난하거나 설교를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에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을 찾고 자신의 삶을 일궈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자가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는 힘은 다양한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을 체험한 윤 신부는 그 교육철학을 학교 밖에서도 실현코자 2019년 ‘놀체인 양업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한다.

놀이를 통해 체험케하고, 그 체험을 통해 인성을 키우는 학습의 장. 놀체인 양업 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윤병훈 신부)은 건강하고 자기 주도적인 청소년을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의 아지트를 만들자’ 수업에 참여한 숲반 아이들이 나무로 아지트를 만들고 있다.

■ 건강하고 자기 주도적인 청소년으로

“나무는 열매를 왜 만들까요?”

“나무랑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서요”, “세상을 더 좋게 하려고요”, “자기를 지키려고 열매가 나오는 것 같아요.”

취재를 위해 놀체인 양업 사회적협동조합을 찾은 5월 21일은 숲반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비가 끊이지 않은 탓에 숲이 아닌 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됐지만 아이들은 소풍을 온 듯 설렌 표정이었다. ‘숲에서 나를 보다’를 주제로 한 이날 프로그램에서는 꽃과 나무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붉은 꽃잎과 푸른 나뭇잎이 수업 준비물로 쓰였다. 커다란 나무 줄기가 그려진 천을 모양이 다른 나뭇잎으로 꾸미는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각기 다른 나뭇잎처럼 각자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한 꽃잎과 나뭇잎을 두드려 손수건에 문양을 새기면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도 체험했다. 아이들에게는 꽃잎과 나뭇잎을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놀이가 됐다. 꽃잎을 던지고 나뭇잎을 얼굴에 붙이고 머리에 꽂아보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A양(9)은 “숲반 수업을 하면서 산에 가서 나무에 이름을 지어주고 집도 지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며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좋은 산의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학교 수업보다 숲반 수업이 더 좋다”고 미소지었다.

놀체인 양업 사회적협동조합은 숲반과 다놀이반으로 운영된다. 소외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숲반이 숲에서 하는 체험에 집중한다면 다놀이반은 보다 확장된 활동을 진행한다. 흙과 숲, 산, 문화예술·마음성장, 현장체험이라는 5가지 주제로 구성된 활동은 속리산 등반, 양서·파충류 탐사, 미술·음악 심리치유 프로그램, 의사소통 훈련, 봉사활동, 텃밭 가꾸기, 뮤지컬 관람 등 다양하다.

※후원 계좌 : 농협 351-1130-8558-13 놀체인 양업 사회적협동조합

◆ 놀체인 양업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윤병훈 신부

“끝까지 기다려주는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 변화시켜”

“아이들은 저를 예수님께로 이끈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1993년 매괴고등학교 윤리교사에서 시작해 28년간 사제이자 교육자로 살아온 윤병훈 신부. 그에게 학생들은 동방박사를 예수님께로 이끈 별과 같은 존재였다. ‘사랑으로 마음을 드높이자’는 예수님 말씀을 새기며 교육자의 길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지역의 반대를 이겨내고 어렵게 세운 양업고였지만 자리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처음 몇 달간은 학교에 쌓인 담배꽁초를 주으며 다녔고, 결석하고 놀러간 아이들에게 ‘잘 놀다 조심히 학교에 돌아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윤 신부는 기다렸고, 고민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상처받아 밖으로 튕겨 나가는 아이들에게 간섭이나 설교는 역효과가 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 신부는 “담배를 빼앗지 않고 흡연터를 만들어 그곳을 이용하라고 했고, 기숙사 소등 시간도 아이들 스스로 정하라고 했다”며 “얼마 뒤 아이들이 먼저 흡연터를 없애자고 제안하고, 소등 시간도 11시로 정해 선생님께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강제하지 않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 덕분에 학생들은 변했고 성장했다. 양업고에서의 경험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이 있다면, 길을 잃었던 아이들도 천천히 삶의 방향을 올바로 찾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와 산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경치를 함께 바라봤고, 자신을 부정하는 아이와 봉사활동을 하며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의미없는 경험은 없습니다. 힘들고 슬프고, 또 기쁜 경험들이 아이들에게는 삶을 일궈가는 힘을 키워줄 수 있는 훌륭한 동력이 될 수 있죠.”

2017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윤 신부는 양업고에서의 경험을 세상 밖으로 가져와야겠다고 결심했다. 보다 많은 아이들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윤 신부는 “아이들과 다양한 경험들을 오감으로 체험하면서 그 모든 것이 제게 생생한 신앙이 됐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별이 됐다”며 “우리의 교육현장이 엘리트를 양성하는 것보다 한 생명 한 생명을 소중하게 돌볼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