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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한국가톨릭문학상 특집] 인터뷰 / 본상 수상자 마종기 시인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1-04-20 수정일 2021-04-20 발행일 2021-04-25 제 324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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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을 지탱해 준 신앙을 시로 표현했죠”
아동문학가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문학가 꿈꾸며 자란 시인
신앙 통해 어려움 이겨내는 힘 얻어
의사로 일하면서도 문학 놓지 않고 가톨릭 영성 깊이 배어 있는 시집 펴내

한국가톨릭문학상이 제24회를 맞았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문학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고자 1998년 가톨릭신문사가 제정한 한국가톨릭문학상은 그동안 교회 안팎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문인들에게 주어졌다.

올해는 본상 수상작으로 마종기(라우렌시오) 시인의 「천사의 탄식」(2020, 문학과지성사), 신인상 수상작으로 신현이 작가의 「아름다운 것은 자꾸 생각나」(2018, 문학동네)가 선정됐다.

193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연세대 의대,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했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뒤, 「조용한 개선」(1960), 「두 번째 겨울」(1965), 「평균율」(공동시집: 1권 1968, 2권 1972), 「변경의 꽃」(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그 나라 하늘빛」(1991), 「이슬의 눈」(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2006), 「하늘의 맨살」(2010), 「마흔두 개의 초록」(2015) 등의 시집을 펴냈다. 또 다른 작품으로 「마종기 시전집」(1999), 시선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2004),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2003)과 「아주 사적인, 긴 만남」(2009),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2010), 「우리 얼마나 함께」(2013),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2014)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마종기 시인은
“나를 살려준 것은 문학입니다.”

아동문학가였던 아버지를 보고 자라 어려서부터 문학가를 꿈꿨던 마종기 시인. 과학을 공부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에 의대에 들어갔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은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당시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였던 시인 박두진과 가깝게 지냈던 그는 본과 1학년이었던 1959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로 등단하게 된다.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간 마 시인은 30여년을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했지만, 그의 삶을 지탱해준 것은 문학이었다.

“문학이 없었다면 괜찮은 의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의사의 삶이 없었다면 지금의 시가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마 시인은 등단 60주년을 맞아 발표한 시집 「천사의 탄식」을 통해 82년 삶을 관통했던 정서들을 엮어냈다. 그는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아주 멀고 멀리 산 넘고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고달픈 말과 글을 모아서 고국에 보낸다”고 적었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방인으로 살며 외로움의 시간을 견뎌낸 그의 삶은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시 안에 담겼다.

“바지락에 겉절이나 펄펄 끓는 감자탕이/의사인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지만/당신은 모른다./벼랑 끝에서 참아낸/수많은 헛발질의 억울하고 매운 맛,/함께 굴러다니고 싶어 찾아 헤매던 맛,/얼큰하고 깊고 맵싸한 곳만 찾아다니는/나도 언제 한 번쯤은 모여 살 수 있을까./아무래도 그런 건 다음 세상의 일일까.”(‘바지락이나 감자탕이나’ 중에서)

“흙은 서울의 흙이든 해외의 흙이든/인간의 몸을 채우는 재료라지만/같이 살던 흙에서 떼어놓으면/천천히 사라지고 마는 것인지/혼자 산다는 게 그렇게 힘든 것인지/싱싱한 냄새도 풀 죽어 시들고/꽃을 키우던 든든한 힘줄도 보이지 않는다.”(‘서울의 흙’ 중에서)

1965년 여름, 공군사관학교 군의관이었던 마 시인은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가 군인은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투옥됐다. 기소유예로 풀려났지만 그는 한국에서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었다. 권력과 이념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그의 손에는 늘 종이와 펜이 들려 있었다. 종이에는 떠나온 고국의 풍토와 두고 온 가족을 향한 그리움, 귀향의 꿈과 좌절에 대한 미련, 의사로서 겪었던 부담이나 외로움 등의 정서가 모국의 언어로 빼곡히 채워졌다.

1960년 「조용한 개선」을 시작으로 60년간 13권의 시집을 내놓은 마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어쩌면 마지막 될지도 모르는 시집”이라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존재를 이번 시집을 통해 바라봤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신앙이었다. 마 시인은 “살면서 힘들 때가 많았지만 신앙을 통해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받게 됐다”며 “신앙은 내 시작이자 끝이며 저에게 시가 신앙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할 만큼 제 삶에서 가톨릭 신앙은 지배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가톨릭 신앙을 소재로 한 여러 시들 가운데 표제작인 ‘천사의 탄식’은 마 시인에게 더욱 애착이 가는 시다. “지난 봄, 시집에 들어갈 시들을 모두 내놓고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쓴 시가 ‘천사의 탄식’이었죠.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댈 곳이 없는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은 결국 하느님뿐이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창궐하는 역병은 세상을 찌르고 사람들은 수없이 죽어서 쌓이고 매장할 곳도 화장할 곳도 없다는데 60년 전 시인이 되겠다고 한 건방진 약속, 늦었지만 이제 취소합니다. 숨 쉴 곳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이제는 생애의 성사를 받을 시간, 수많은 죄와 회한을 기쁨으로 바꾸어주는 당신께 다가간다. 지는 노을 속에 자욱한 영혼들, 천천히 날아오르는 오, 부끄러운 내 몸.”(‘천사의 탄식’ 중에서)

하느님 없이 혼자서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과거를 지나 하느님께 다가가게 된 마 시인. 반성과 회한의 시간을 거쳐 그는 ‘죄와 회한을 기쁨으로 바꿔주는 하느님’에게로 다가갔고, 하느님이 주신 기쁨의 시간을 기다린다. 마 시인의 시집 「천사의 탄식」은 “추방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자의 슬픔을 토로하면서, 그 슬픔을 쓸쓸하지만 따뜻한 아름다움으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제24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시인 스스로 몸을 낮춘 채 진솔하고 간결한 언어로 인간과 사물을 쓰다듬는 포용력을 보여준다”며 “여기엔 넓고 깊은 가톨릭 영성이 배어 있다”고 평했다.

마 시인은 “팔순이 넘은 나이에 상을 받는다는 게 쑥쓰럽지만 기쁘기도 하다”며 “제 삶에서 신앙이 중요했던 만큼 한국가톨릭문학상은 제게 그 어떤 상보다 특별한 의미를 준다”고 소감을 밝혔다.

■ 수상작 「천사의 탄식」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50년 넘게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마종기 시인. 타국에서 의사이자 시인으로 살았던 그에게 의사로서 겪은 체험은 시의 자양이 됐고, 모국어로 시를 쓰며 이국에서 겪는 고독과 향수를 달랬다. 2015년 「마흔두 개의 초록」 이후 5년 만에 선보인 이번 시집은 반세기 동안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살아가며 겪었던 외로움이나 고국을 그리워하는 일,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깊은 회한, 삶에서 마주한 소박한 존재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성찰까지, 인간의 삶에 대한 연민과 비애를 몸으로 껴안는 포용력을 보여준다.

여러 갈래로 뻗어온 마 시인의 시들은 이번 시집을 통해 그 물길들이 어울려 더 너른 강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팔순을 넘긴 시인은 “노년을 지나는 심정은 누구나 비슷할테지만, 외국에 오래살았기에 삶을 바라보는 감정의 진폭이 더 넓지 않을까 싶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번 시집에는 다가오는 시간을 마주하는 노년의 심상, 삶에 대한 통찰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아울러 자신의 인생을 지배했던 중요한 가치 즉, 신앙의 의미도 시를 통해 말한다. ‘사순절의 나비’, ‘사소한 은총’을 비롯해 표제작인 ‘천사의 탄식’에서는 창궐하는 역병에 신음하는 세상을 목도하며 우리가 기댈 곳은 수많은 죄와 회환을 기쁨으로 바꿔주는 하느님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