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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 무엇을 논의했나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21-03-16 수정일 2021-03-16 발행일 2021-03-21 제 3236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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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나눔 운동’ 전국 차원 확대… 이주민 돕기 힘 쓰기로
교황의 백신 나눔 권고 따라 취약계층과 저소득 국가 지원
두 차례 접종 가능 금액 봉헌 교구별로 모아 교황청에 전달
이주 노동자 인권 문제에 주목 생존권 위협·편견과 차별 지적 
교회 차원 사회적 약자로 선정 사목적 배려에 더욱 힘 쓰기로

주교회의 2021 춘계 정기총회에 참석한 주교단이 3월 9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 주교단은 이번 춘계 정기총회에서 백신 나눔 운동 전국적 전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사목적 배려 요청, 미얀마 유혈사태에 우려를 표명하고 미얀마와의 연대를 밝히는 성명서 발표 등 굵직한 결과를 내 놓았다. 특히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에게 형제애로 다가가 연대하고 도움을 주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이 외에도 이번 정기총회에서는 「한국 천주교회 교리 교육 지침」(개정판) 승인, 한국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협의회와 월드와이드매리지엔카운터 한국협의회 회칙 개정안 승인, 주교위원회와 전국위원회 위원장 선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정기총회는 3월 8~11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렸다.

■ 코로나19 백신 나눔 운동 펼치기로

먼저 한국 주교단은 춘계 정기총회에서 ‘백신 나눔 운동’을 전국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대유행 중인 코로나19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을 통해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전 세계에서 다양한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됐고, 각국에서 접종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국민을 대상으로 무료 접종을 시작했다.

문제는 개발·생산된 백신의 보급이다. 현재 100여 나라가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공급된 백신 75%를 부유한 선진국들인 10여 개국이 독점하고 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캐나다는 자국 인구에 5번, 미국은 4번, 유럽연합은 3번 예방접종을 하기에 충분한 백신을 확보할 정도로 ‘백신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성탄 메시지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이 모두에게, 특히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어둠과 불확실성을 겪는 우리에게 백신의 발견은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다”면서 “이 희망의 빛이 모두에게 비추도록 모두가 백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도 가장 취약한 계층과 지구촌 모든 이들에게 백신이 주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백신이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교황의 바람에 따라 대전교구는 지난 1월부터 가난한 나라에 백신 보급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나눔 운동’을 시작했다. 대전교구는 현재까지 20만 달러를 교황청으로 보냈다. 또 춘천교구도 교황의 백신 나눔 권고에 따라 올해 ‘사순 시기 희생저금통’ 모금액을 코로나19 백신을 구하지 못하는 저소득 국가 지원에 사용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서울대교구와 수원교구가 백신 나눔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손병선, 이하 한국평협)는 지난 2월 6일 정기총회를 열고 ‘백신 나눔 운동’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제자리 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평협은 애덕실천의 일환으로 백신 나눔 운동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한국평협은 주교회의에 백신 및 치료제 보내기 운동을 제안했고, 한국주교단은 이번 정기총회에서 이 제안을 받아들여 전국 차원의 백신 나눔 운동을 펼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각 교구는 사회복지회나 사회사목국을 통해 모금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두 차례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금액(6만원)을 봉헌할 수 있다. 신자가 아닌 사람도 참여할 수 있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지난 3월 11일 정기총회 결과를 설명하며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과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탄생 200주년 맞이해 펼치는 백신 나눔 운동은 좋은 애덕실천의 예가 될 것”이라면서 “좋은 뜻을 가진 분들이 많이 동참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교회의 2021 춘계 정기총회에 참석한 주교단이 3월 9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5층 대회의실에서 회의 안건을 논의하고 있다. 주교회의 미디어부 제공

■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목적 배려 요청

한국 주교단은 이번 총회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 노동자를 주목하고, 이들을 올해 한국교회 차원의 사회적 약자로 선정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 노동자 속행씨가 영하 18도의 한파 속에서 저체온증으로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죽기 이틀 전부터 난방이 끊기는 등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속행씨는 인간적인 처우를 보장받지 못한 채 죽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는 동티모르 출신 이주 노동자 코르레이아 카르발 아폴리나리오씨가 노동 인권 문제와 관련해 출석해 증언하기도 했다. 전북 군산 앞바다의 섬 개야도에서 지난해 8월 ‘탈출’한 아폴리나리오씨는 사실상 섬에 감금된 상태로 노예처럼 일해야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이민자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2020년 5월 기준)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 노동자는 85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환경은 열악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주노조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설문조사(이주노동자 655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주 52시간을 넘겨 일하는 경우는 50%에 달했고, 주 68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경우도 12%나 됐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6시간이었다. 주거환경도 열악했다. 주야간 일하는 시간대가 다른 노동자들이 한 숙소를 공유하고 있었다. 작업장 소음과 먼지, 냄새로부터 안전하지도 않았으며 욕실이 실내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주교회의는 이주 노동자 중 특히 도서 지역과 농촌 지역에서 일하는 이들은 여전히 인권 사각지대에 있으며, 코로나19로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과 거주 환경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로 인해 발생하는 외국인 혐오와 관련된 사회적 편견과 이주민들이 겪는 불평등과 인권 피해는 더욱 늘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주교단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 노동자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고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에 힘쓰기로 한 것이다.

이용훈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표방하시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것을 당부하셨다”면서 “이러한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며, 이것이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으로 우리 교회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 주교단은 이번 춘계 정기총회에서 주교위원회와 전국위원회 위원장도 일부 선임했다.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에는 정신철 주교,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장에는 손삼석 주교,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장에는 이기헌 주교가 새로 선출됐다.

또 전국위원회 중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에 문희종 주교, 정의평화위원회·노동사목소위원회·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위원장에 김선태 주교,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 이용훈 주교,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에 김주영 주교,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위원회 위원장에 배기현 주교, 해외선교·교포사목위원회 위원장에 한정현 주교, 보건사목 담당에 서상범 주교가 각각 선출됐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