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행복해지려면, 걸어라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2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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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지구 살리는 걷기, 걷지 않을 이유가 없죠
느린 속도로 자아 되새기고 삶과 자연 관조하는 걷기의 매력
걷는 행위로서의 신앙인의 순례 무너진 관계와 영혼 회복하는 일
자동차 이용 줄이는 도보·자전거 탄소 발자국 감소에 가장 효과적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은 건강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연 생태의 건강이다. 그리고 ‘걷기’는 이 세 가지 건강을 가져다 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겨울의 끝, ‘걷기’에 좋은 계절을 앞두고 몸과 마음, 자연의 건강을 지키는 ‘걷기’를 생각해 본다.

■ 걷기 열풍

“그렇게 걷다 보면, 행복한 걷기라는 것은 없고 행복 자체가 걷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틱낫한 ‘걷기 명상’ 중에서)

십수 년 전부터 ‘걷기’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제주 올레에서부터 시작된 걷기 열풍은 전국에 걸쳐 걷기를 일상화했다. 제주 올레는 지난 2007년 9월 제1코스가 문을 연 후 2012년 정규 마지막 코스까지 총 26개 425㎞에 달해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을 불러 온 주역이었고, 매년 100만 명씩 제주 올레를 찾았다.

이에 앞서 2006년 경, 스페인 도보 순례길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여행 에세이 등을 통해서 국내에 소개되면서 도보여행과 걷기의 독특한 ‘갬성’이 사람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빠르게 여행 포인트들을 찍고 사진을 남기는 속도전에 익숙했던 여행자들은 느린 속도로 자아를 되새기고 삶과 자연을 관조하는 ‘걷기’에 매료됐다.

걷기는 원래 인간 삶의 방식이었다. 직립 이후 인류는 동물과 구분됐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기계가 보행을 대신했고, 걷기의 종말이 도래했다. 그러나, 고도 경쟁, 회색 콘크리트 빌딩, 속도전을 강요하는 현실에 숨이 막힌 현대인들은 느리게 움직이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걷기’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 몸의 건강을 위한 걷기

전신 운동인 걷기가 실제로 육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에 의해, 더 이론이 없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다. 허리와 가슴, 등을 활짝 열고 바른 자세로 큰 욕심 없이 꾸준하게 실천하면 굳이 다른 운동을 하지 않아도 건강을 지킬 수 있다.

걷기는 우선 심혈관계를 강화해 심장병을 예방한다. 규칙적인 걷기 운동은 심장 기능을 개선해 심장마비를 37%나 예방할 수 있다. 혈압을 내리는 도파민 호르몬을 증가시키고 혈압을 올리는 카테콜라민 호르몬 분비를 억제해 혈액 흐름이 원활해짐으로써 성인병을 예방한다. 고혈압을 개선하는 데는 걷기가 가장 좋다. 턱걸이, 팔굽혀펴기 등 순간적으로 큰 힘을 쓰는 운동은 말초혈관을 압축하므로 혈압이 올라간다. 따라서 근육 수축과 이완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걷기 운동이 고혈압에 효과적이다.

지방 연소 효과로 비만도 예방된다. 복부 지방을 줄이고자 하는 사람, 콜레스테롤이 걱정되는 사람은 격렬한 운동보다는 걷기와 같이 편한 운동을 장시간 계속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당뇨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규칙적인 걷기로 꾸준하게 적정량의 혈당을 소비하면 당뇨의 원인이 되는 고혈당 상태를 예방할 수 있다.

■ 정신 건강에 도움

웰빙 바람에 동행한 걷기 열풍은 육체적 건강의 방편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동시에 속도전에 지친 현대인의 느린 삶에 대한 동경이 어쩌면 더 큰 동기일 수도 있다. 자동차에 얹혀 다니다 잃어버린 건강한 육체를 되찾으려는 노력과 동시에, 인간미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잃은 정신을 천천히 돌아보려는 욕구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건강 때문에 순례하는 이는 없다.

살다가 벽에 부딪힌 이들, 새로운 ‘나’를 찾으려는 이들, 삶의 고통을 넘어서고 싶은 이들, 영원한 가치와 자유를 갈구하는 이들, 저마다 마음의 상처나 갈망을 품고 사람들은 순례길을 떠난다. 그 길의 끝에서 ‘나’ 자신의 회복을 꿈꾼다.

종교적인 차원에서도, 성지순례의 원초적 형태는 도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구속을 위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순례 영성 전문가 카를로 마짜 신부는 저서 「순례 영성」에서 “순례를 하는 것은 우리 삶의 모범이 되시는 ‘순례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내·외적으로 재현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에 이끌려 약속의 땅을 향해 걸어간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평생을 걸어간다. 그 여정을 우리는 도보 순례로써 ‘내·외적으로’ 재현한다. 그러니, 걷는 행위로서의 순례는 신앙인들에게는 무너진 관계와 영혼을 회복하는 일이다.

2018년 10월 26일 스페인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까지의 구간을 걷고 있는 대전가톨릭평화방송 산티아고 도보순례 참가자들.

■ 훼손된 자연 생태 복원을 위해

걷기는 육체와 정신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과 생태를 되살리는 유력한 방책이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류가 활동을 멈춘 동안, 지구는 다시 숨을 쉬었다. 미세먼지가 줄고, 온난화 현상이 감소했다.

영국·미국·독일·프랑스·노르웨이·네덜란드·호주 등 7개국 국제공동연구팀은 국제저널 「네이처 기후변화」에 게재한 논문에서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안에 격리되고 국경이 봉쇄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어 2020년 4월 7일까지 세계 일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17메가톤(Mt)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전년도 일일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00Mt이어서 17%나 줄어든 것이다.

오늘날 생태 환경 문제와 관련해 가장 긴급한 현안은 기후 위기다. 지구를 데우고 있는 온실 가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각국의 다짐은 결연하지만 별반 성과는 없었다.

영국 리즈대가 7000여 건의 기존 연구를 분석해 개인이 ‘탄소 발자국’(직간접적으로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남기지 않는 효과적인 방법 10가지를 추려 보니, 그 중 자동차 이용을 삼가는 것이 으뜸으로 나타났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실내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며,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에 힘쓰거나, 전기 에너지를 절약하고, 나무를 심는 등 개인이나 집단적으로 다양한 ‘탄소 제로’ 방법이 있다.

온실 가스 배출 규제에 진즉부터 관심을 가졌던 유럽연합 15개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다양한 탄소 배출 감소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제조업, 전력, 건설, 농업 등 대부분 분야에서 온실 가스 배출량을 20~30% 줄였다.

하지만 교통 부문에서는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량이 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통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시민들 각자의 노력과 실천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자동차 이용을 줄이는 것이다.

교통수단별 탄소 배출량을 살펴보면, 한 사람이 1㎞를 이동할 때 승용차는 210g, 버스는 27.7g, 지하철은 1.53g의 탄소를 배출한다. 반면 자전거와 걷기가 배출하는 탄소량은 0g이다. 결국 아주 먼 거리는 어쩔 수 없이 교통 수단을 이용해야 하지만, 그것도 버스나 기차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조금 먼 거리는 자전거로, 가까운 거리는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답이다.

■ 행복해지려면, 걸어라

결국, 문명의 이기는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걷기나 자전거 등 몸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육체와 정신, 게다가 자연 생태까지 이롭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신앙적으로 죄악에 가깝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