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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올바른 제정 필요하다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1-01-05 수정일 2021-01-05 발행일 2021-01-10 제 3227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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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살리자는 건데… 이윤이 중요한가
위험에 내몰린 노동자 위해 산업재해 예방하려는 법안
기업 이익 보호하는 취지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 커

종교계와 시민사회계에서 2020년 연내 제정을 촉구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안전에 대한 기업 차원의 투자를 유도한다는 입법취지가 퇴색한 채 국회에서 논란만 거듭되고 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를 비롯한 불교, 개신교 노동사목 기관들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 종교계 안팎 시민사회계는 지난해 지속적인 성명서 발표와 연대 활동을 펼쳤지만 국회 내 논의가 거듭될수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중대재해기업보호법’으로 변질됐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해 6월 정의당 강은미 의원을 시작으로 국회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관련 의안이 5건 제출된 후 지난 연말 정부안이라 할 수 있는 ‘부처 간 협의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부처 간 협의안에는 법 공표 후 2년 동안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유예, 인과관계 추정 조항 삭제, 공무원에 대한 책임 범위를 ‘직무유기’로 한정 등 당초 입법취지를 흐리는 방향의 조항들이 대거 들어왔다. 또한 재해 피해자 적용 범위를 ‘2인’으로 바꾼 조항도 등장해 구의역 사고나 고(故) 김용균씨 사건 등 혼자 일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피해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처지가 됐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이주형 신부는 부처 간 협의안을 접한 후 “우리나라 사업장 절대다수가 100인 미만 규모인데 이들에게 법 제정 후에도 적용을 유예한다는 것은 국회가 기업 이익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부분의 안전사고가 혼자 일하다 발생하는 점을 생각하면 2인 이상 사고가 나야 법을 적용하겠다는 것 역시 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처사”라고 평가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2017~2019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노동자들의 사고재해와 질병재해를 합한 사망자 수가 2017년 1957명, 2018년 2142명, 2019년 2020명으로 나타났다. 이 신부는 “공식 통계가 매년 2000명 선이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망자 수도 적지 않다”며 “법에 따르게끔 강제할 수는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고 그래서 종교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톨릭교회는 「간추린 사회교리」에서 “경제 활동과 물질적 진보는 인간과 사회에 이바지하여야 한다”(326항)며 경제적 이윤보다 인간과 사회적 가치가 우선돼야 함을 명시한다. 또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에서 발간한 「기업 리더의 소명」에서는 기업 리더에게 기업활동을 통해 공동선을 추구하며 인간을 성장시킬 사명을 요구한다.(41항)

2019년 10월 부산 문현동 경동건설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추락해 선종한 고(故) 정순규(미카엘·선종 당시 57세)씨 아들 정석채(비오·36)씨는 “제 아버지처럼 ‘잘 다녀올게’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기고 목숨 걸고 일하러 나가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며 “국회가 기업 편을 드는 현실에서 누군가의 부모, 남편, 형제들이 노동현장에서 죽어 가고 있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