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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시간을 걷다] 천주교인 김대건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0-12-28 수정일 2020-12-29 발행일 2021-01-01 제 3226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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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불의와 유혹에 맞서 당당히 신앙 고백할 수 있나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삼위일체 신앙 온전히 살아
어느 누구도 소외됨 없는 주님 안에서의 일치 추구
갈등과 위기 겪는 오늘날 순교의 십자가 진 선조처럼 망설임 없이 신앙 증거해야

서울 새남터 순교성지에 마련된 국내 최대 규모의 야외 아트글라스 유리화 ‘김대건 신부의 축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신앙인은 누구든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천주교인’ 김대건은 이 물음에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라고 답했다. 그리고 망나니의 칼날에 스러지기까지,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었다.

한국천주교회가 성 김대건 신부에게 던져진 이 물음을 주제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는 이유는 우리도 “천주교인”이라는 대답을 하기 위한 것이다.

■ 천주교인 김대건

성 김대건 신부는 불과 13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 사제로 살았다. 하지만 그의 평생은 삼위일체 신앙을 온전히 살아간 신앙인의 모범이었다. 그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성부께 대한 온전한 의탁,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 그리고 언제나 자신 안에 머물렀던 성령의 도우심에 의한 것이다.

그는 성부께 대한 깊은 신뢰로써 환난 속에서도 천주께서 자신과 양떼들을 보호해 주실 것을 믿었다. 그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삶의 절대적인 주인으로 여기고 그분에게 충실하고 그분과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 또한 그가 쓴 서한들에서 하느님의 성령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나타나지 않지만, 그는 언제나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이 자신의 삶에 충만하다고 믿었다.

김대건 신부는 자신이 결국은 체포돼 순교의 길을 걸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순교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원하고 준비했다. 옥중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순교를 하느님과 항구한 사랑의 일치 안에 머무는 계기로 여겼다.

■ 서로 사랑으로 돌봄

하지만 김대건 신부는 이 세상을 벗어난 영복만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모든 교우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로 일치해 친교를 나누고 서로 돌봐 주기를 끊임없이 권면했다. 1846년 8월말경, 그는 옥중에서 마지막 회유문을 통해 환난 중에서도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矜憐)하실 때를 기다리라”고 당부했다.

초대교회는 종종 ‘대조사회’로 불린다. 세상 논리와는 전혀 다른,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법으로 통치되는 공동체의 모습이 주위 다른 이들과는 대조를 이룬다는 의미다. 그들에게 신앙 고백은 곧 사랑 실천이었다. 주님 안에 하나로 일치해 어느 누구도 소외되거나 굶주리는 일이 없도록 했다. 김 신부는 교우들에게 죽어서 하느님 앞에서 만날 때까지 한결같이 ‘큰 사랑을 이루어’ 살아가기를 권면했다.

이 세상에서 나타나는 하느님 나라 실천은 곧 평등과 박애정신으로 드러났다. 유네스코에서 성 김대건 신부를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한 이유는, 김대건 신부로 대표되는 신앙 공동체가 복음과 신앙을 실천에 옮기면서 평등사상과 박애정신을 드러내고 구현했기 때문이다. 철저한 계급 사회, 차별이 엄격한 신분 사회 속에서, 모든 인간 존재의 동등한 존엄성을 지키며 평등사상을 실천함으로써, 초대교회 신앙 공동체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증거했다.

■ “우리는 천주교인인가?”

희년을 맞은 한국천주교회는 “우리는 천주교인인가?”라고 스스로 물어야 한다.

여전히 기세가 줄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는 인류에게 많은 물음을 거칠게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 경제 양극화 등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서로 미워하고 분쟁과 갈등을 일상으로 여긴다. 교회 내적으로는 나태한 신앙, 새로운 무신론과 기술 만능주의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민족적으로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분단의 아픔 속에 놓여 있다.

한국천주교회는 격동의 근현대사 안에서 때로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통해 양심의 최후 보루로서 자리매김 되기도 했다. 반면, 일제에 협력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맹목적인 멸공 이데올로기에 매몰돼 사랑과 자비의 정신, 민족적 자부심을 소홀히 여기기도 했다. 1990년대 말 이후 중산층화된 교회 안에는 가난한 이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세속적 자본주의에 유혹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김대건 신부와 그의 신앙 공동체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삶으로 실천했다. 그와 신앙 선조들은 순교의 십자가를 지고서 세상이 주는 환난을 이기고 순교로써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했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관리에게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라고 답했다.

이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몫이기에, 입을 모아 “우리는 모두 천주교인들이오”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삶으로써 이 응답을 증거해야 한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