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 빈센트 나눔터 ‘한울마루’를 가다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0-12-21 수정일 2020-12-22 발행일 2020-12-25 제 3225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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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내어주는 나눔에 하느님 사랑 채워지다
가난한 이웃들 직접 찾아가 영적·물적 필요에 응답하며 빈센트 성인 영성 적극 실천
식자재·생필품 등 나눠주며 사각지대 놓인 이들 보살펴
봉사자·후원자도 큰 버팀목

수원시 팔달구 중부대로 119-4번지에 위치한 ‘성 빈센트 나눔터 한울마루’(책임 차화옥 수녀, 이하 한울마루).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가 운영하는 한울마루는 저소득층과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생활필수품 등을 무료로 나누는 공간이다. 올해로 문을 연 지 10년이 됐다. 식자재와 의류, 신발 및 생필품을 갖추고 어려운 이들을 맞는다. 매주 한 번 계란과 식용유, 고추장 등 필수 먹거리를 포함해 음식도 나누는데, 거동이 어려운 이들은 직접 찾아가 전해준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은 더 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지금, 이 나눔터는 그들 삶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가슴 따듯한 장소가 되고 있다.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오신 아기 예수님의 손길과 발걸음이 아닐 수 없다.

■ 비우면 채워지는 곳

기자가 한울마루를 찾은 지난 12월 17일은 매주 음식을 나누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들어서니 ‘우리 자신을 비우면 하느님은 곧 당신으로 채워 주십니다(성 빈센트)’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오전 8시부터 부엌에서는 먹거리 담당 안현정(바르바라) 수녀와 봉사자들이 음식 마무리에 한창이었다. 특별히 동지를 앞두고 팥죽이 커다란 가마솥 두 곳에서 끓고 있었다. 하루 전날부터 집에서 쑤는 것처럼 팥 껍질을 일일이 까서 삶고 정성껏 찹쌀 새알을 빚었다. 동치미와 함께 팥죽은 이름표가 붙은 도시락통에 담겼다. 기증받은 초콜릿도 간식으로 곁들여졌다.

2층으로 된 한울마루 건물은 1층 생필품 진열장과 2층 나눌 음식을 만드는 부엌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 수혜 대상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 계층, 노숙자, 독거 어르신 등이다. 현재 400여 명이 인연을 맺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100여 명이 늘었다. 지역 주민센터와 본당, 지인 소개 등을 통해 추천을 받은 후 방문 면담으로 회원 등록이 결정된다. 그리고 맞춤형 지원이 진행된다. 사정이 급한 경우에는 타 지역 거주자라도 도움을 준다. 회원이 되면 지원은 기간 제한 없이 계속 이어진다.

1층에는 쌀과 밀가루, 식용유, 통조림, 라면 등 기본적인 식자재와 다양한 생활필수품들이 정리돼 있다. 수녀회에서 사다 놓은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기증받은 것들이다.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다섯 가지 물품을 가져갈 수 있다. 이때 쌀과 계란, 우유, 고기, 반찬, 과일, 빵 등 부식이 기본으로 함께 제공된다.

음식 포장이 끝나자 직접 찾아와 가져갈 수 있는 이들 것은 1층에 나란히 진열돼 놓였고, 방문 배달 분량은 차화옥(율리엣다) 수녀와 봉사자로 구성된 방문 배달 팀에 의해 차곡차곡 차에 실렸다. 이들은 당일 오전 오후, 다음 날까지 3~4차례에 걸쳐 인근 지역 50여 세대를 방문한다. 경기도 평택 등 장거리에 사는 10여 세대는 계절별로 찾아간다. 매장에 걸린 빈센트 성인의 당부처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시간과 물품 등 각자 가진 것을 내어놓은 나눔이 다시 하느님 사랑으로 채워져 또 다른 나눔으로 전해지는 모습이었다.

매장에서 반찬을 전달받은 김광선(바오로·69·수원 조원동주교좌본당)씨는 “나를 위해 누군가 음식을 챙겨주는 정성이 먼저 낮은 곳에 다가서 주는 교회 모습으로 비친다”며 “늘 감사함 속에 예수님 사랑을 느끼고, 받은 것을 이웃과 나누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울마루 2층에 마련된 부엌에서 안현정 수녀와 봉사자 김윤자씨가 회원들에게 나눠줄 팥죽을 쑤고 있다.

회원들에게 나눠줄 음식들. 각각 이름표가 붙어 있다.

고준옥 수녀가 회원들에게 나눠줄 음식 포장을 살펴보고 있다.

차화옥 수녀가 한 독거 어르신을 방문해 근황을 나누고 있다.

■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한울마루가 이 자리에 문패를 단 것은 2010년부터이지만, 시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한 이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영적·물적 필요에 응답하는 것은 성 빈센트 드 폴 성인이 자선 활동 초기부터 해오던 방식이다. 수녀회는 이런 영성에 바탕을 두고 한국 진출 초창기부터 도심 변두리 불우 이웃을 찾아다니며 어려움을 나눴다.

2006년경부터 방문 대상이 늘어나며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수녀회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으로 가정방문 팀과 전담 소임자를 정하는 등 더욱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의 틀을 잡았다. 지금 건물을 매입해 사무실로 리모델링하며 이름도 한울마루로 정했다. 한울마루는 ‘울타리’라는 의미로, 하늘과 언덕이라는 뜻의 마루를 합친 것이다. 현재는 3명의 수도자가 방문과 물품 나눔, 반찬 만들기 담당 등을 나눠 맡고 있다.

2016년부터 한울마루와 함께하고 있는 고준옥(마태아) 수녀는 “세상 제일 낮은 곳에 사는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며 배고픈 이가 없도록 골고루 나누는 곳”이라며 “빈센트 성인의 영성이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면에서 수녀회서도 자부심을 느끼는 자리”라고 한울마루를 설명했다.

봉사자와 수많은 후원자는 한울마루를 지금껏 있게 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30여 명 봉사자는 일주일에 하루 오전 오후로 나눠 3시간씩 시간을 낸다. 이들은 반찬을 만들고 매장을 지키고 방문에 함께한다. 올해 80세인 김윤자(크리스티나·수원 지동본당)씨는 초창기부터 지금껏 부엌을 지킨다. 방문 팀장인 최부영(클라라·79·수원 지동본당)씨도 가족 돌보듯 회원들을 찾는다.

봉사에 합류하지 못할지라도 살림을 아껴 꼬박꼬박 매달 후원에 참여하는 이들, 쌀이나 빵 채소 등 먹을거리, 다양한 생활용품을 보내오는 이들도 모두 기억해야 할 대상이다.

코로나19는 한울마루에도 타격을 입히는 중이다. 도움 요청하는 이는 늘었는데 봉사자 수는 줄어들었다. 20㎏ 쌀을 2㎏씩 포장하거나 매장에 온 회원에게 물품을 챙겨드리는 일에서부터 방문 차량 운전 등 소소하게 필요한 일손은 늘 부족한데 봉사자가 부족해지며 기존 봉사자들이 두 배 이상 시간을 쏟고 있다. 대면 활동을 하지 못하니 회원을 만나 말벗을 해드리지도 못하고, 근황을 듣고 부족한 부분을 살피는 일도 어렵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더 심각해지더라도 비대면 비중을 늘리는 등 대안을 마련해 활동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각오다. 어려운 이들에게 한 끼는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차화옥 수녀는 “수녀회 주보이신 빈센트 성인 정신에 따라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이 언제나 드나들 수 있는 곳, 하느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는 한울마루가 되기를 바란다”며 “봉사자와 은인들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힘든 이들이 이곳에 와서 배고픔을 채워갈 수 있도록 꾸준한 도움이 되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문의 031-256-2151 성 빈센트 나눔터 한울마루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601-644589 한울마루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