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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을(촌) - ‘명랑촌’ 자살 예방 활동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0-12-15 수정일 2020-12-21 발행일 2020-12-20 제 322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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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스스로 이웃 돌보며 삶의 희망 전하는 ‘생명 안전망’
2012년 10월 처음 결성된 이후 지역 생명사랑 활동가 양성하며 프리허그·상담·방문 프로그램 등 자살 예방·생명사랑 캠페인 펼쳐
민관 협력 네트워크 구축 큰 성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제15회 생명의 신비상 활동분야 장려상에 서울 마포구 생명 사랑 활동가 주민 모임인 ‘명랑촌’을 선정했다. 지역의 자살 예방과 생명 사랑 의식 고취를 위해 주민들 스스로 조직한 ‘명랑촌’은 날로 심각해지는 자살 문제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명랑촌’ 이름은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을’을 줄인 말이다.

■ 희망과 위안을 주는 포옹

‘명랑촌’ 사람들은 요즘 이웃을 만나면 5가지 손 인사를 나눈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해요”, 손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어 “사랑해요”, 반가워서 “악수”, 힘내자고 “하이 파이브”, 그리고 당신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고 “따봉!”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 전에는 아무 데서나 만나면 껴안았다. ‘프리허그’(Free Hug)였다. 포옹을 통해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지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며 위안을 준다.

코로나19 때문에 프리허그를 5가지 핸드허그(Hand Hug)로 대체했지만 효과는 같다. 사랑 어린 눈길로 마주보며 나누는 허그로 이들은 상대에게,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서로 생명의 소중함과 삶의 희망을 얻어간다.

■ 흩날린 생명

‘명랑촌’의 취지는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소박하다. 지역 내 자살을 예방하고 이웃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2012년 10월 처음 생겨났다. 현재 생명 사랑 활동가 양성 교육 과정을 거친 회원 20명이 활동하고 있다.

생명 사랑,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한때 생명이 낙엽처럼 흩어졌던 때가 있었다. 2012년 여름, 인근 동네에서 주민들의 잇따른 자살이 있었다. 당시 심각성을 느껴 실시된 전수조사에서는 60%가 자살 충동을 느꼈거나 실제로 자살 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명랑촌 활동가 ‘소나무’(별칭)씨는 아이들이 주민 자살 현장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이는 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주민의 모습을, 중학교 1학년이었던 막내는 흰 천에 덮여 실려 가는 시신을 목격했어요. 하루는 밥을 먹는데 ‘OO동 할머니가 추락했는데 아시는 분…’ 하는 방송이 나오니까 아이들이 ‘며칠 전에도 이런 방송을 했다’는 거예요.”

아파트 단지 안에 흩날리는 생명에 대해, 아이들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 자살, 예방할 수 있다

지역 내에 위치한 성산종합사회복지관(관장 심정원)에서 생명사랑 활동가 양성교육이 2012년 10월에 처음 시작됐다. 주민들의 잇따른 자살에 심각성을 느껴 자살 예방 및 대처 활동에 참여할 봉사자 및 지역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명랑촌 박미자 촌장은 “교육을 받은 후에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며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던 주민이 ‘이제는 약 안 먹어요’라고 할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생명사랑양성교육을 받은 수료생들이 모여서 ‘명랑촌’이라는 이름으로 마을 주민 공동체를 형성했다. 명랑촌 활동은 기존 자살 예방 대응 방법들과 달랐다. 사례 관리를 통한 개별 지원, 서비스 제공 중심의 일방적 지원 및 지원 연계가 이전 방식이었다면, 명랑촌은 주민 스스로 주민 간 관계망을 형성하고 강화해, 사각지대가 없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기를 원했다.

양성 교육은 모든 활동의 근간을 이룬다. 한국자살예방센터, 중앙자살예방센터, 생명의전화종합사회복지관, 정신건강복지센터 등과 연계해 2020년까지 모두 540여 명을 교육했다. 교육을 통해 생명사랑 활동가가 양성되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 갔다.

■ 주민 스스로 지키는 생명

명랑촌은 매월 한 차례 활동가 정기회의를 갖는다. 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한 자리인 ‘주민왔수다’를 시작으로 “우리 마을의 생명을 구(9)하자”는 의미로 매월 9일에는 생명사랑 캠페인을 펼쳤다. 프리허그, 희망 상담실, 희망 메시지 나누기, 가가호호 방문, 자살 바로알기 퀴즈 등의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총 80회가 실시됐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새싹보리나 콩나물 기르기, 반려식물 기르기 등을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도입했다. 마을축제와 결합해 연 1회 주민들과 함께 생명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마을 걷기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20대부터 80대까지의 명랑촌 활동가들이 스스로 힘을 합쳐 이웃들에게 한걸음씩 다가가며 소통한 결과이다.

‘생명사랑 네트워크’는 자살 예방을 위한 민관 공동의 획기적인 성과로 여겨진다. 활동가 주민들의 제안으로 자살 예방 공동 대처를 위한 네트워크가 꾸려졌다. 명랑촌을 위시해 마포구보건소, 마포구정신건강복지센터, 성산2동 주민센터, 성산종합사회복지관, SH공사 마포주거복지센터 등 총 5곳이 참여해 주민들의 필요에 적극 대응한다.

총무 박미나씨는 “네트워크 형성은 생명 사랑 활동에 있어서 가장 큰 쾌거였다”며 “주민들의 힘만으로는 안전망이 엉성할 수밖에 없는데 많은 기관이 참여해 촘촘한 그물망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핸드허그’(Hand Hug)로 인사하는 명랑촌 촌장 박미자(오른쪽)씨와 총무 박미나씨.

명랑촌이 2019년 2월 9일 성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마련한 생명사랑 캠페인에서 주민들이 프리허그를 하고 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마을축제는 항상 명랑촌이 지역 주민들을 이끌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생명사랑 마을길 걷기로 시작한다. 성산종합사회복지관 제공

■ 실천과 활동의 보람

주민 중심의 꾸준한 자살 예방과 생명 사랑 활동은 지역 주민들의 자살률을 크게 감소시켰다. 실제로 최근 수년 동안은 지역에서 자살이 거의 없었다. 명랑촌의 존재는 이제 지역 주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박미자 촌장은 “8년 동안 생명사랑 캠페인으로 주민들을 만나다 보니 이제는 주민들이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나누고 말을 건넨다”며 “지역마다 그 지역의 특성과 주민 구성에 따른 특화된 생명 사랑 단체들이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생명은 소중한 선물”이라는 박미나 총무는 “8년 동안 활동하면서 만나는 주민들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면서 “처음에는 제가 그분들을 껴안아 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분들이 저를 껴안아 준다”고 밝혔다.

성산종합사회복지관 심정원 관장은 “명랑촌은 지역 사회에 온기를 건네 준다”며 “주민들이 스스로 곳곳에서 이웃을 돌보고 안아 주면서 삶의 희망을 전한다”고 말했다. 심 관장은 특히 “여러 가지 활동이 복지관을 무대로 진행되지만 모든 활동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조직으로 이뤄진다”며 “복지관에서도 최대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랑촌의 생명 사랑 활동은 2016년 한국자살예방협회 주최 생명 사랑 대상에서 네트워크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2018년에는 보건복지부 생명 존중 정책 민관협의회 민간 자살 예방 프로그램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6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실시한 제15회 ‘생명의 신비상’ 활동 분야 장려상에 선정됐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