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붓글씨로 신구약 성경필사한 백순희 서예가

이나영 기자
입력일 2020-07-14 수정일 2020-07-14 발행일 2020-07-19 제 3204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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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15년 정성… “한지에 스며든 하느님 말씀”
숱한 고난 속에서 단 하루도 거른 적 없어
한문 필사도 계획 “그저 주님께 감사할 따름”

15년 만에 붓글씨 성경필사를 마친 서예가 백순희씨와 필사본.

“15년이 걸린 필사였습니다. 마지막 장을 쓰고는 바닥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저 주님께 감사할 따름이었죠.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2005년 12월 1일부터 붓글씨 성경필사를 시작해 지난 6월 8일 마침표를 찍은 백순희(바울라・71・대구 상인본당)씨는 경력 40여 년의 서예가다. 대구시 서예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문인화 등으로 수많은 예술대전에서 수상한 실력가. 그런 그가 무려 15년에 걸쳐 한 획 한 획 채운 필사본 152권은 그의 방 한 쪽을 채우고 있었다. 인쇄한 듯 동일한 간격으로 한지를 빼곡이 채운 글씨들은 그 자체로 경건한 느낌을 풍겼다.

“2005년 세례를 받으면서 필사를 권유받았죠. 1983년 무렵 서예를 시작했으니 붓글씨로 성경을 한 번 써보자 해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

매일 아침 5시30분 일어나 세례 이후 한 번도 거른 적 없는 아침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백씨. 기도 후에 먹을 갈고 성경을 쓰는 것이 십여 년간 지켜온 그의 일상이다. 평온해 보이는 하루의 시작이지만 오랜 세월 꾸준히 이어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명의를 빌려준 지인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모든 재산을 잃었고, 혈우병으로 오랜 세월 병수발 해온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식물인간이 된 남편과 빚…. 백씨는 그 무렵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하고 필사를 시작했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기분으로 살아냈다. 그 세월 속에서 두 아들은 장성했고,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결코 편안했다 말할 수 없는 모든 시간이 지나고, 그는 어떤 원망이나 슬픔도 없이 주님을 향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남게 해주셔서, 그리고 이런 환경에도 붓을 놓지 않게 이끌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백씨는 쉼 없이 다시 붓을 잡았다. 이번에는 한문으로 신구약을 필사할 예정이다.

“이번 필사도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꾸준히, 주님이 이끌어 주시리라 믿고 한 글자 한 글자 써 나가려 합니다.”

이나영 기자 la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