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20년 동안 먹과 붓으로 성경 필사한 이정애씨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0-02-18 수정일 2020-02-18 발행일 2020-02-23 제 3183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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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 돌보시는 하느님 느끼게 됐어요”

20년 동안 한지에 먹과 붓으로 신구약성경 전권을 필사한 이정애씨는 필사를 하면서 마음과 정신에 변화를 느꼈다고 말한다.

“은총이요? 사는 게 은총이지요.”

한글 성경 필사로 얻은 은총을 물으니, 하느님의 은총이야 원래 온 세상에 넘쳤다며 웃는다. 이정애(마리요셉·74·전주 삼천동본당)씨는 애당초 세상에 태어나 숨 쉬고 사는 게 모두 하느님 덕분이니 은총이 따로 있겠냐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주님 성탄 대축일에 즈음해 본당 주임 김기곤 신부의 권유로, 20년 동안 먹과 붓으로 닥종이에 적은 성경 전권 필사본 전시회를 성당 로비에서 가졌다. 유난떠는 것 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더 많은 이들이 성경에 대한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처음 필사를 시작했던 때가 1994년경이다. 중국어 전공에 서예를 배웠으니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였다. 복음서들을 쓰고 나니 주위에서 탐을 내기에 선뜻 선물했다. 몇 년을 그러다 보니, 신구약 전권을 필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999년 시작된 전권 필사가 2019년 가을에 끝났으니 꼬박 20년이 걸렸다.

혼인을 하고 4명의 자녀를 두었다. 시부모 모시고 살던 집이 방 6개짜리 한옥이었다. 매일 30여 장씩 연탄 갈기, 낙엽 쓸기에 아이가 넷이니 살림도 분주했다. 지금이야 다 출가시키고 내외가 사니 좀 여유롭지만, 그 전에는 성경을 쓰기 위한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뭐 별 대단한 생각으로 시작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을 쓰다 보면 분명히 마음과 정신이 바뀌지요.”

필사는 하루에 대략 4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다른 일도 있고 체력도 달려서 더 오래는 무리다. 이씨는 성경 구절을 무작정 베끼는 것이 아니라, 한 글자씩 곱씹고, 마음에 드는 구절은 메모하고, 읽은 구절이 영혼을 자극하면 기도도 바치니 시간이 많이 든다.

20년을 해 온 일이니 이제는 밥 먹고 잠 자듯 일상에 고정됐다. 처음에는 바둑판에 대고 필사를 하다가 좌탁을 마련했고, 수년 전에는 “하느님 말씀을 어찌 아무 데나 놓고 쓰겠는가” 하는 생각에, 가장 좋은 호두나무로 만든 필사 전용 책상을 들였다. 이씨는 “멀찍이 책상만 봐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다시 ‘은총’에 대해 물으니, “하느님께서 걱정 말고 ‘글씨만 써라’ 하고 돌봐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어서 한지 값도 부담이었다. 값비싼 종잇값 걱정을 하니 지인이 종이를 줬다. 책 매는 실을 걱정하니 집 앞에서 깨끗하고 튼튼한 실 뭉치를 줬다. 몸치인지 자주 넘어지는데, 무릎 한 번 까지지 않는 것도 이씨는 은총으로 여긴다. 돌아보면 한평생이 모두 은총이다.

주말 내내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을 모아 서당을 열고 한문을 가르친다. 백방 수소문 끝에 한문 성경을 구한 그는 한문 성경 전권 필사에 도전하고 있다. 한글보다는 글자 수가 크게 적어 대략 4년 정도에 끝낼 요량이다.

“필사를 하다 보니, 하느님께서 제 삶을 돌보신다고 확신하게 됐지요. 저는 이제 하느님을 간절히 원합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