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계 병자의 날] 성가복지병원 자선진료 현장을 가다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0-02-04 수정일 2020-02-05 발행일 2020-02-09 제 318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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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에 대한 작은 사랑으로 기적 이뤄지는 곳 
30년째 운영 무료진료병원
제대로 된 치료 받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 몸과 마음 돌봐
외국인 노동자도 함께 진료

성가복지병원 강주원 의무원장이 2월 1일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해 1935년 사제품을 받은 생제 피에르(Singer Pierre, 한국명 성재덕) 신부는 같은 해에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한국의 모습은 처참했다. 일본에게 핍박받고 가난으로 굶주리는 이들이 곳곳에 넘쳐났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전사자, 부상자, 고아와 무의탁자들이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난과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목격한 피에르 신부는 그들을 위해 봉사할 것을 다짐한다. 그렇게 1943년 설립된 성가소비녀회는 가난한 자, 환자, 무의탁자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성가소비녀회가 설립된 지 77년이 지났지만 가난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제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배고픔뿐만이 아니다. “게을러서 가난한 거야”, “왜 저렇게 어리석게 살아”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들이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내몰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성가복지병원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병원이다. 가난한 이, 소외받는 이들을 초대하는 성가복지병원은 하느님의 현존을 만날 수 있는 곳이자 기적이 이뤄지는 현장이었다.

병원장 김미자 수녀가 외국인 환자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 ‘가난함과 가난한 이, 미소한 이들을 사랑하시오’

‘가난함과 가난한 이, 미소한 이들을 사랑하시오’라는 성가소비녀회의 정신을 지향하며 1990년 문을 연 성가복지병원은 모든 진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 최초 무료진료병원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설립 당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수녀님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세상물정을 모르고 시작하는 거야”, “후원금으로 얼마나 오래가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허름하고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병원 주변은 이제 고층 건물이 들어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세월과 함께 지역의 모습은 변했지만 성가복지병원의 이념과 의료활동은 30년 전과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79병상에서 시작한 병원은 지금 68병상(중환자실과 호스피스 병동 29병상, 단기 환자 병동 39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내과,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비뇨기과, 안과, 이비인후과, 정신건강의학과, 부인과, 피부과, 치과, 통증클리닉 등 다양한 과목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진료대상자는 제한돼 있다. 차상위 계층과 노숙자, 행려환자, 무의탁자, 외국인 노동자, 암보험과 생명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호스피스 환자다. 1990년부터 2018년까지 성가복지병원을 다녀간 환자는 외래진료 58만7685명, 입원 67만677명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병원의 진료대상자에도 변화가 생겼다.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외국인 환자의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 병원에서 높은 비용으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기 일쑤다. 때문에 성가복지병원에서는 이를 배려해 무료진료 대상자에 외국인 노동자도 포함시켰다.

취재를 위해 찾은 지난 2월 1일 성가복지병원은 평소보다 더욱 분주한 모습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병원 입구에서 체온을 재고, 마스크와 손소독제까지 받고 나서야 병원에 들어설 수 있었다. 오후 진료가 오후 2시에 시작되지만 1시부터 줄을 선 사람들이 복도 끝까지 찼다. 1층 데스크에서 진료과목을 말하고 표를 받은 환자들은 2층으로 올라가 본인의 진료과목에 해당하는 방 앞에 앉는다.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찾은 이모(74)씨는 “척추관 협착증으로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상태가 더 나빠져서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료로 진료해주는 병원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병자들.

■ 기댈 곳 없는 이들의 언덕

성가복지병원은 3명의 상주 의사와 51명의 봉사의료진이 진료하고 있다. 이밖에 간호, 약국, 물리치료 등 의료봉사자와 목욕과 세탁, 이미용 등을 책임지는 일반봉사자들이 병원 일을 돕고 있다. 이곳의 봉사자들은 ‘저 분은 주님이시다’라는 생각으로 환자들을 대한다. 병원에 있는 동안은 편안한 마음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성가복지병원 강주원(요한 사도) 의무원장은 “여기서는 의료적인 치료뿐 아니라 집처럼 편하게 느끼고 돌아갈 수 있도록 의료진을 비롯해 봉사자들이 배려하는 것이 다른 병원과 다른 점”이라며 “이곳의 봉사자들이 따뜻하게 챙겨주는 덕에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편하게 들르는 ‘단골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이 곳에서 9년간 근무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개인의 노력이 부족해서 가난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그분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사고로 어려워졌고,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런 분들에게 제가 가진 작은 것을 나누는 것이 신앙인의 길이 아닐까 합니다.”

◆ 인터뷰 / 병원장 김미자 수녀

“소외된 이 전인적 치유 절실한 시대 그들 향한 시선은 더 차가워져 걱정”

“30년을 후원금으로만 운영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어요. 30주년에는 더욱 많은 분들과 이 기적을 나누고 싶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위한 병원’을 기치로 힘든 도전을 시작한 지 30년. 성가복지병원이 지나온 시간을 함께 해 온 병원장 김미자 수녀(아모스·사진)는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나 현존하시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 곁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수녀는 “우리 병원을 오시는 분들은 사회의 복잡한 형식과 절차를 따라가지 못해서, 경쟁해야 하는 것에 적응하지 못해서 온 몸이 무방비인 상태로 살아가는 벌거벗은 이들”이라며 “이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접촉과 위로이며 이는 하느님의 가르침과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30년 무료병원의 역사와 함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형태는 다양해졌다. 가난한 현실은 그대로지만, 세상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다. 김 수녀는 이런 시대일수록 하느님이 행하신 전인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수녀는 “저는 성가복지병원의 30년 역사를 돌아보며 제가 과연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길가에서 발견한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 돌봤는지 돌아봤다”며 “성가복지병원이 함께하는 모든 이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생생한 하느님의 집이 되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희망을 전하는 곳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30주년을 맞아 오랫동안 고민했던 바람도 털어놨다.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분들을 도와드리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 병원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죠. 올해는 보다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통해 더욱 많은 분들의 벗이 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후원 계좌 : 우리은행 048-068235-01-015(사회복지법인 성가소비녀회)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