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2) 들어가며 (하)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9-12-30 수정일 2019-12-31 발행일 2020-01-05 제 317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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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생활단·재속회 등 다양한 모습

수도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왔다. 사진은 2014년 ‘성 베네딕도 유럽의 수호성인 선포 50주년’을 기념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모인 봉헌회원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9세기 말부터 10세기 초에 걸쳐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은 쇠퇴해 갔다. 클뤼니 수도원을 중심으로 수도 생활에 대한 쇄신 운동이 일었고 이는 교회 쇄신에까지 힘을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베네딕도회 내에서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 일어나 여러 수도승원들이 연합회를 구성했다. 대표적으로 1098년 몰렘의 아빠스 성 로베르토에 의해 시작된 시토회를 들 수 있다.

시민 교육의 등장과 이단적 사상 발생 등 12세기 후반부터 유럽 사회가 변화의 시기를 겪으면서 사회적인 변화와 요청에 부응하는 수도회가 생겨났는데 그것이 바로 탁발수도회다. 대표적인 예가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가르멜회, 아우구스티노회 등으로 이들은 재산을 소유하지 않으면서 동냥과 희사에 의지하여 살았고 명상 생활과 함께 사목 직무나 사도직을 수행했다.

특히 프란치스코회를 세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삶의 원칙으로 삼아 ‘소수성’과 ‘가난’을 강조하는 영성을 드러냈으며 수도자들의 겸손하고 열렬한 생활은 기성 교회에 실망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울러 교회 쇄신과 전교에도 큰 공헌을 했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교회가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예수회 등 교회를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수도회가 생겨났다. 예수회 설립자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전통적인 수도 생활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도 생활 형태를 시작했다. 수도원은 수도자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개념이 아닌, 복음 선포를 위한 전초 기지 역할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수도 신분의 필수적 표지로 여겨지던 수도복과 수도원 전례 등 수도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미를 넘어서, 세상 안에 뛰어 들어가 가장 시급하게 여기는 일을 처리했다. 또 ‘영성 수련’을 고안했다.

여성 활동수도회의 효시는 이탈리아 메리치에 의해 창설된 우르술라회라 할 수 있다. 메리치는 가정에서 동정 생활을 하며 버려진 어린이와 여성들을 돌봤다. 이전까지 여성들은 봉쇄 생활 안에서만 수도 생활이 가능했기에 세상 안에서 수도 생활을 하려는 그녀의 이상은 많은 어려움과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창설된 우르술라회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급격히 세속화되어가던 유럽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복음적 봉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여러 창설자에 의해 여성 수도 생활은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며 시대가 요청하는 복음적 징표의 증거에 많은 몫을 남겼다.

근대에 와서는 수도회와 비슷하지만, 공식적인 수도 선서를 하지 않고 공동생활을 하는 단체, 사도 생활단이 생겼다.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파리 외방 전교회, 메리놀 외방 전교회,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재속회는 프랑스 대혁명 후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이 요청되면서 탄생했다. 기존 수도회처럼 복음을 살기 위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복음적 삶을 사는 것이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