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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 담화 내용은?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19-12-23 수정일 2019-12-24 발행일 2020-01-01 제 317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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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잃지말고 서로 대화하는 ‘평화의 장인’ 되자”
큰 주제는 ‘대화’ ‘화해’ ‘생태적 회심’
불신과 공포에 따른 악순환 대신
대화와 신뢰 통한 참형제애 실천
그리스도인 먼저 앞장서길 당부

1968년 1월 1일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평화란 생명과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지닌 가장 높고 절대적인 가치를 선포하는 것”이라면서 세계 평화의 날을 제정했다. 이후 교회는 해마다 1월 1일을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며, 교황은 메시지를 발표한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주제는 ‘희망의 여정인 평화: 대화와 화해와 생태적 회심’이다. 교황은 희망은 우리 인류를 평화를 향한 여정에 나서도록 이끌고 있다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화해의 정신을 담아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평화의 장인이 되어 “새로운 방식으로 생명을 바라보는 생태적 회심에 나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제53회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의 주요 내용을 알아본다.

2018년 1월 7일 이탈리아 바리의 성 니콜라오 대성당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날리는 프란치스코 교황. CNS 자료사진

■ 온 인류의 열망인 평화

“평화는 소중한 선(善)이자, 우리 희망의 대상이고 온 인류 가족의 열망”이라며 담화를 시작한 교황은, “희망은 극복할 수 없어 보이는 장애들이 있을 때조차 우리가 여정을 시작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는 덕목”이라며 ‘평화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 것을 강조했다. 교황은 인류 공동체는 “기억으로든 실재로든” 전쟁과 분쟁이 남긴 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점점 더 큰 파괴력을 지니는 전쟁과 분쟁은 특히 가난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피해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모욕과 배척, 슬픔과 불의의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교황은 “모든 나라가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착취와 부정부패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애쓰고 있지만, 오늘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많은 이들의 존엄성, 신체적 온전성,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자유, 공동체 연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시당하고 있다”면서 “모든 전쟁은 인류 가족의 사명으로 새겨진 형제애를 파괴하는 일종의 형제 살해”라고 역설했다.

최근 일본 사목방문 중 핵무기 폐지를 요청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 교황은 “평화와 국제적 안정은 상호 파괴에 대한 공포나 전멸의 위협에 기반한 그 어떤 시도와도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평화와 국제적 안정은 미래에 봉사하는 연대와 협력의 세계 윤리에서 시작될 때에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또 교황은 불신과 공포는 관계를 약화시키고 폭력의 위험을 증대시켜 결코 평화의 관계로 이끌 수 없는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면서 “핵 억제도 신기루 같은 안보만 만들어낼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황은 온 세계에 만연하고 있는 불신의 힘을 타파하기 위해 “하느님께 공동 기원을 두고 있는 우리는, 이 공동의 기원에 기초하고 대화와 상호 신뢰로 이루어지는 참형제애를 추구해야한다”고 당부했다.

■ 기억과 연대와 형제애에 기초한 평화

교황은 기억은 희망이 펼쳐지는 지평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전쟁과 분쟁의 어둠 속에서도 연대의 작은 몸짓을 체험했을 때, 이에 대한 기억이 용기 있고 영웅적이기도 한 결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또한 이러한 기억은 개인과 공동체 안에 새로운 활력을 북돋우고 새로운 희망을 불타오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사목방문 당시 만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생존자들인 ‘히바쿠샤’를 상기한 교황은 이들이 과거의 형언할 수 없는 참상과 고통을 증언하고 있음을 주목했다. 교황은 “이들의 증언은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고 보전하여 인류의 양심이 온갖 지배욕과 파괴욕에 더욱 강력히 맞설 수 있게 한다”면서 “경험의 열매인 기억이 평화 증진을 위한 현재와 미래의 결정들에 밑바탕이 되고 영감으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평화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도전 과제다. 민족과 공동체, 국가 간의 수많은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때문이다. 이에 교황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의 도덕적 양심에 그리고 개인적 정치적 의지에 호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황은 “평화는 인간의 마음 깊숙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면서 “정치적 의지는 언제나 새로워져야 하고, 그렇게 할 때에 개인과 공동체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이어갔다.

교황은 평화는 “언제나 꾸준히 이룩해 나가야 하는 것이며, 언제나 공동선을 추구하고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며 법을 존중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역설했다. 교황은 “세상은 공허한 말이 아니라 확신에 찬 증인, 바로 배척이나 조작 없이 대화에 열려 있는 평화의 일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황은 “실제로, 서로 다른 견해와 이념을 뛰어넘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확신에 찬 대화 없이는, 참평화에 다다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교황은 평화의 여정은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복수심보다 훨씬 강한 공동의 희망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길을 여는 인고의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 화해와 생태적 회심을 통한 평화

교황은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배욕을 버리고 우리가 서로를 인격체로, 하느님의 자녀로, 형제자매로 바라보는 법을 배울 것”을 당부했다. 이어 교황은 “이러한 존중의 길을 선택할 때에만, 우리는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버리고 희망의 여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교황은 “용서하며 살아가는 법을 익힐 때, 평화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역량은 더욱 커진다”면서, 진정한 평화는 “무상성과 친교에 몫을 할애하는” 더 정의로운 경제 구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교황은 자신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인용하며, 생태적 회심이야말로 “타인을 향한 적개심과 우리 공동의 집에 대한 존중 부족, 천연 자원에 대한 과도한 착취로 발생한 결과”에 대한 건설적이며 정당한 대응이라고 역설했다. 교황은 최근 열린 범 아마존 지역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특별회의를 우리가 “공동체와 땅, 과거와 현재, 경험과 희망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를 설정해 생태적 회심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교황은 “화해의 여정은 하느님께서 우리에서 선물로 주신 공동의 집인 이 세상에 대한 경청과 관상도 요청한다”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생태적 회심은 예수님과의 만남의 결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화해의 여정에는 인내와 신뢰가 필요하다”면서 “평화를 희망하지 않으면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교황은 또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사랑에 감화돼 “평화의 가능성을 믿고 다른 이들도 우리만큼 평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면서, 그리스도인들은 갈등의 원천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만남의 문화를 증진하며 보편적 형제애로 살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