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할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는데 그 고백이 본당신부 귀에 들어갔고, 신부의 요청으로 한 한국인 수녀가 할머니를 만나러 왔다. 수녀는 할머니의 고민을 말끔히 씻어줬다. “강제로 그런 건데 무슨 죄가 있어요? 성당에 갑시다.” 할머니는 1970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안나’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2000년 6월, 할머니는 중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뒤 쭉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고령에 거동이 불편한데도, 할머니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을 다니며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증언하는 평화 활동가로 살고 있다.
할머니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소녀같던 할머니 얼굴은 사라지고 진지한 표정만 남았다.
“우리는 일본에 당해서 그들이 나쁘다는 걸 잘 알잖아요. 일본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일본정부가 나쁜 거예요. 그런 끔찍한 일을 하고도, 단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요. 일본사람보다 한국사람이 더 미워요. 오히려 한국사람들이 우리보고 끌려간 게 아니라 우리 발로 갔다 하잖아요. 비록 소수가 그런 말을 한다 해도, 소수가 다수를 물들이잖아요.”
어떤 말로 그 한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정당하게 사죄를 받고 역사를 정의롭게 바로잡겠다는 신념으로 이옥선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힘든 싸움을 해나가고 있다.
이 할머니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하느님, 그리고 할머니를 돕는 주변 사람들이다. 고령에 거동이 불편해도, 절대 미사는 빠지지 않는다는 할머니. 할머니는 차량봉사자의 도움으로 나눔의 집에서 약 5㎞ 떨어진 퇴촌본당(주임 임익수 신부)에 나가고 있다.
신앙친구였던 고(故) 김군자(요안나·1926~2017) 할머니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함께 다녔지만, 지금은 혼자 미사에 참례한다.
“요안나 할머니 살아있을 때가 좋았는데…. 그래도 안 빠지고 성당에 나가요.”
이옥선 할머니는 해외 일정 중에도 반드시 주일을 지킨다고 말했다. 2013년 7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방문했는데, 당시 글렌데일시에 해외 최초로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윤석원 가주한미포럼 대표의 도움으로 LA 성삼한인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당시 본당주임이 현 마산교구장인 배기현 주교였다. 배 주교는 당시 성삼한인본당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며 이 할머니를 격려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니 더 힘을 낼 수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도 고마워요. 우리 편에 서서 일본에게 사죄하라고 말해주잖아요. 일본이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법적배상을 할 때까지 하느님께서 함께해주실 거라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