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준형의 클래식 순례] 슈베르트의 오라토리오 <라자루스>

황혜원
입력일 2025-07-23 08:49:32 수정일 2025-07-23 08:49:32 발행일 2025-07-27 제 3452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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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안경을 낀 곱슬머리의 아담한 청년, 우리가 슈베르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입니다. 혹은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문학과 음악을 논했던 모임인 ‘슈베르티아데’나,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병자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슈베르트의 종교 음악과 신앙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오스트리아 빈 황실 성당의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 평생 교회 음악을 썼지만, 그가 살던 19세기 초반 오스트리아의 젊은 지식인 중에는 보수적인 오스트리아 가톨릭교회에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슈베르트의 미사곡 중에는 ‘신앙의 의혹을 표현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교회 음악을 신중하게 들어보면 그의 내면에 신앙에 관한 열의가 있었으며, 또 음악을 통해 이를 표현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미사 두 곡 <A플랫 장조>와 <E플랫 장조>에는 슈베르트의 가장 숭고한 음악이 담겨 있으며, 맑고 순수한 감정에 살짝 음영이 숨어 있는 다섯 번째 <살베 레지나(Salve Regina)>(D676) 역시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작품은 슈베르트의 깊은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오라토리오 <라자루스(Lazarus)>입니다. 7월 29일이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인 만큼 시기적으로도 적절하지요.

슈베르트는 20대 초반이던 1819년에서 1820년 무렵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깊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라자루스>는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미완성으로 그쳤지만 슈베르트의 어느 작품보다도 그의 내면에 숨은 영성을 드러낸 음악이자, 감동적인 후기 작품의 깊은 표현을 예고하는 숨은 걸작이라고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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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슈베르트가 성가대원으로 노래했던 오스트리아 빈 황실 성당. 출처 위키미디어

헤르만 니마이어(Hermann Niemeyer)가 쓴 시는 예수님이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일화에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화를 더했는데, 현재 남은 악보는 라자로의 장례식 장면에서 끝이 납니다. 슈베르트는 라자로가 평화롭게 숨을 거두는 장면,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며 부르는 글루크 풍의 합창에서 단아하면서도 강렬한 표현을 통해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런가 하면 레치타티보(Recitativo, 서창(敍唱))와 아리아를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고 계속 음악이 흐르는 독창적인 시도는 작곡가 바그너를, 악기를 아껴 쓰면서도 절묘한 색채를 낸다는 점에서는 20세기 음악을 예고하는 선구적인 면모도 있습니다.

한창 <라자루스>를 쓰던 1820년 3월, 슈베르트와 친구들은 ‘슈베르티아데’를 수상쩍게 여긴 경찰에 체포되어 진술서를 쓰고 풀려났습니다. 굴욕적인 경험을 겪고 슈베르트는 한동안 작곡을 하지 못했는데, <라자루스> 역시 아마도 이때 중단된 것 같습니다. 슈베르트가 작곡을 마칠 수 있었다면, 라자로가 다시 살아난 장면은 과연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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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